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승여행] 쉐보레 볼트EV와 함께 찾은 조선왕릉, ‘파주 장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승여행] 쉐보레 볼트EV와 함께 찾은 조선왕릉, ‘파주 장릉’

입력
2019.06.01 06:47
0 0
쉐보레 볼트 EV와 함께 파주 장릉을 찾았다.
쉐보레 볼트 EV와 함께 파주 장릉을 찾았다.

쉐보레 볼트EV는 국내 EV 시장에서 큰 의미를 남긴 차량이다.

가장 먼저, 1회 충전 시 400km에 육박하는 긴 주행 거리를 확보하며 EV 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고, 어느새 볼트EV 이상의 주행거리를 확보한 여러 차량들이 데뷔하며 EV 시장의 열기를 보다 뜨겁게 끌어 올렸다.

게다가 최근 미국에서는 ‘겨울철 주행 거리 감소가 제일 적은 EV’라는 평가를 받으며 ‘배터리 컨디셔닝’ 기술에 대한 GM의 노하우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으며, GM의 미래차 전략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준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파주 장릉을 가다

쉐보레 볼트EV와 함께 시승 일정을 소화하던 중 지도에서 낯익은 지명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바로 ‘파주 장릉’이 그 주인공이었다. 사실 파주 장릉은 사적지로 지정된 후 복원 및 보존 등의 절차를 가진 후 지난 2016년 6월 부분 개방, 그리고 2018년 9월, 완전 개방을 한 곳이다. 그리고 이어진 호기심으로 인해 파주 장릉으로의 주행을 시작했다.

우수한 드라이빙의 볼트EV

쉐보레 볼트EV는 고성능 모델을 개발하기 비교적 수월한 EV 시장에서 아주 두드러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감성을 자아낸다. 특히 150kW(환산 출력 204마력) 급 전기모터가 배치되어 36.7kg.m의 토크를 발휘하여 발진 가속, 추월 가속은 물론이고 시속 150km/h가 넘는 속도 영역에서도 만족스러운 주행 감성을 과시한다.

실제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으면 곧바로 휠 스핀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휠 스핀과 함께 가속 시 전개되는 EV 특유의 펀치감은 여느 내연기관 차량과는 확연히 다른, EV 고유의 매력을 한껏 느끼게 한다.

실내 공간은 쉐보레의 전통적인 감성과 미래적인 존재감이 적절히 조합된 모습이다. 듀얼콕핏을 기반으로 제작된 대시보드는 독특한 패턴과 큼직한 디스플레이 패널 등을 곳곳에 적용해 다양한 기능은 물론이고, 볼트EV에 적용된 넉넉한 배터리 용량과 전력의 움직임 등과 같은 EV 고유의 기능의 조작 및 파악과 함께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조작을 지원한다.

다양한 도로에서 매력을 뽐낸 볼트EV

쉐보레 볼트 EV와 함께 파주 장릉으로 가는 길은 볼트 EV의 매력을 확인하기에 손색이 없는 시간이었다.

실제 서울에서 강변북로와 자유로를 달리는 과정에서는 볼트 EV의 넉넉한 출력과 페달 조작과 함께 전개되는 주행 감성은 일상 주행은 물론이고 기존의 I.C.E 차량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유로 주행을 끝낸 후 지방의 도로를 통해 파주 장릉으로 가는 길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볼트 EV에 집중한다면 지방도로와 마을의 작은 길, 그리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노면이 고르지 못한 곳에서도 여전히 우수한 주행 질감을 선사한다는 것이었지만 또 반대로 ‘왕릉’ 가는 길의 정비가 아직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참을 달려 파주 장릉에 도착하게 되었다.

사적 제203호인 장릉에는 인조와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가 함께 잠들어 있다. 전체 약 35만㎡ 대지에 자리잡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능원이지만 그 동안 문화재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장릉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인조는 조선의 여느 임금 못지않게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임금이다.

그의 탄생도 임진왜란 중인 1595년이었고,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왕위에 오르는 운명을 맞이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버리고 사대라는 명분으로 반금친명을 추진했다가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게 되었다.

특히 병자호란 때는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으로 끌려갔고, 또 많은 국민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국가적인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한편 인조는 사후에도 승하해서도 편치 않았다. 파주 운천에 위치했던 기존의 장릉은 자주 화마에 휩싸였고, 또 능 근처에는 뱀과 전갈이 주위에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 집을 짓는 등의 일이 많았다. 그래서 영조 7년(1731년), 현재의 자리로 이장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장릉은 합장능 주변의 석물로는, 봉분 아래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그 바깥을 돌 난간으로 둘렀다. 봉분 앞에 상석 2좌를 배치해 2위를 표시했고, 상석 중앙 정면에 장명등과 양쪽에 망주석 2기를 세웠다. 그 아래는 문인석과 무인석 1쌍씩이 서 있고, 봉분 주위로 석마(石馬), 석양(石羊), 석호(石虎)를 2필씩 배치해 왕릉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파주 장릉의 관람하려면?

파주 장릉은 시기에 따라 관람이 다소 제한적인 장소다. 2월부터 5월 그리고 9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6월부터 8월까지는 오후 6시 30분까지 진행되며 11월부터 1월까지는 5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참고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이며, 매표 시간은 관람 종료 한 시간 전에 종료되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점을 참고해 방문할 필요가 있다.

한편 경기도 북부와 서울 등에는 이외에도 수 많은 조선 왕릉이 자리하고 있으니 사적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라면 조선 왕릉을 하나씩 찾아 가보는 것도 무척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한편 파주 장릉을 비롯한 조선 왕릉은은 모두 문화재청이 지정한 사적이자 또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사적지인 만큼 관람 시의 정숙을 깨는 행위나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사진: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 문화재청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