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장대비가 멎었다. 하늘이 다시 맑아졌다. 허블레아니(인어) 유람선이 침몰한 다뉴브강 주변도 물기가 걷혔다. 주말엔 날씨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예보가 있던 터라 어떻게든 지금 이 기회를 살려야 했다.
31일 낮 12시 45분(현지시간), 헝가리 구조대 측 다이버가 다시 강물 속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속수무책이었다. 다이버는 금세 다시 뭍으로 나왔다. 폭우 때문에 한번에 크게 불어난 물의 힘은 여전했다. 침몰 사고 현장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부근 강물은 여전히 잿빛이었고, 유속이 어찌나 빠른 나머지 다리 남단에 묶어둔 구조선 2대 주변에는 큰 소용돌이가 일어날 정도였다.
유람선 침몰 사고 사흘째. 여전히 수색 구조작업에는 진척이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물이 너무 불어난 상태라 다음주 월요일쯤에나 수색이 가능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우리 수색팀을 투입할 수 있을 지 협의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수색작업은 총력전 양상이다. 5m를 넘어선 다뉴브강 수위가 6m에 육박한데다 유속도 시속 9∼11㎞에 달했다. 실종자가 어디까지 떠내려갔을 지 몰라 외교부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 다뉴브강이 지나는 인근 국가 모두에 수색 협조를 요청했다. 이 가운데 세르비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는 잠수부 등을 동원, 수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유람선 인양 준비도 진행됐다. 유람선 자체는 작아서 크레인 등을 동원한 인양작업을 크게 힘들지 않겠지만, 역시 문제는 유속이다.
이날 오후 1시 35분쯤 부다페스트 공항 입국장을 빠져 나온 유람선 탑승객 가족들은 비통한 모습이었다. 모자, 옷깃,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채 국내외 언론들의 취재를 피해 외교부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서둘러 사고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족들은 외부 눈길을 피해 2시20분쯤 사고 현장 인근 섬에 들어 사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처로 이동했다. 뒤이어 탑승자 가족 34명도 항공편을 나눠 타고 부다페스트로 출발했다. 현재까지 부다페스트로 떠난 탑승자 가족은 총 44명으로, 주말까지 5명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앞서 이날 오전 8시10분쯤 헝가리에 도착한 강경화 외교장관은 곧바로 사고 발생 지점으로 이동해 사고 현장을 둘러본 뒤 헝가리 외무ㆍ내무장관을 잇따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사고 현장에 투입할 해군 해난구조대(SSU) 심해잠수사와 소방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을 39명에서 49명으로 확대했다.
여기에는 현장을 방문한 가족들의 DNA 정보를 확인할 경찰청 지문감식 전문인력도 포함됐다. 지문감식 등을 통해 사망한 7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가족이 도착하는 대로 유해 확인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헝가리 대테러청은 잠수부를 투입해 선체 내부수색을 시작할 예정이며, 해경청 중앙특수구조단과 SSU 소속 심해잠수사 등 긴급구조대도 함께 힘을 보탤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유람선을 뒤에서 들이받은 대형 크루즈선 바이킹시긴호의 선장이 체포됐다. 헝가리경찰 대변인은 “바이킹시긴호 선장의 과실이 법원에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앞서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국영 라디오방송을 통해 “당국에 엄격하고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다”면서 “탐승객들이 생존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갑작스런 유람선 침몰 사고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머르기트 다리 위는 시민들이 놓아둔 국화 꽃송이와 촛불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실종자들의 빠른 귀환을 빈다” “이모 보고 싶어요. 빨리 돌아와요”라고 한국어로 쓴 리본도 나부꼈다. 부다페스트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다리 난간에 기대 구조 활동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부다페스트 교민 김희선(38)씨는 “아직 실종자들이 많아 이른 감이 있지만 고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어제부터 현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 주민 홀로쉬 이쉬탄(66)씨는 “2주 전 서울과 설악산을 여행해 한국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헝가리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외신을 통해서는 안타까운 증언들이 이어졌다. AFP통신은 “발코니에 있었는데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물 속의 사람을 보았다”는 바이킹시긴호의 미국인 탑승객 진저 브린튼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다뉴브강 운항 경력 27년의 대형 크루즈선 승선원인 안드라스 쿠르벨리는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주 많은 선박들이 좁은 강에서 오가는 것은 정말로 위험하다”면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후 9시 5분쯤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에는 관광객 30명과 인솔자 1명, 가이드 1명, 사진작가 1명 등 한국인 33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 중 7명은 사망했고, 7명은 구조됐으며 19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부다페스트=김진욱ㆍ홍인택 기자
조영빈ㆍ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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