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北신문에 관련 기사 3건… 통일부 “北에 협력 의사 전달”
식량 위기에 빠진 북한의 민생고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치사율 100%’ 가축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면서다. 얄궂지만 남북 대화 복원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기회다. 대북 지원ㆍ협력을 더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3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높은 발병률, 다양한 전파 경로’와 ‘아직까지 찾지 못한 효과적인 방지 대책’, ‘심각한 후과’ 등 ASF 관련 특집 기사를 3건이나 실었다. 신문은 ASF가 북한과 인접한 중국 선양(瀋陽)시의 돼지 목장에서 지난해 처음 발생했다는 사실을 소개한 뒤 “전염성이 강하고 아주 위험하다”고 전했다.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외부 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대단히 강하고, 채 익지 않은 돼지고기, 절인 고기 속에서도 얼마든지 생존하며, 냉동고기 속에서도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거나 “(돼지) 피와 배설물, 뜨물(돼지 먹이) 속에서도 단시일 내에 사멸되지 않는다”고 심각성을 부각하면서다. 전문가들을 인용, “돼지열병이 생물의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식품의 안전 문제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발병시간이 짧고 전염성이 강해 감염될 경우 돼지 사육 기반이 붕괴할 수 있다”며 주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북한은 전날 ASF 발병 사실을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공식 보고했다. OIE에 따르면 23일 북한 자강도 우시군 북상협동농장에서 신고된 ASF가 25일 확진됐다. 농장 내에 사육 중인 돼지 99마리 중 77마리가 폐사하고 22마리는 살처분됐다. 북한 당국은 이동 제한과 봉쇄 지역 및 보호 지역의 예찰, 사체ㆍ부산물ㆍ폐기물 처리, 살처분, 소독 등 방역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ASF는 예방 백신이 없어 치사율이 100%다. 아프리카ㆍ유럽에서만 발생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과 몽골, 베트남 등에서도 속속 발견됐고, 한반도에까지 유입된 것이다.
문제는 돼지가 북한 주민의 주요한 먹거리이자 수입원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의 열악한 축산 위생 환경을 감안할 때 ASF의 확산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뭄과 홍수 등 연이은 자연재해로 가뜩이나 어려운 식량 사정에 설상가상으로 돼지 기근까지 겹칠 경우 북한 주민의 생활고가 가중되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현재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ㆍ세계식량계획(WFP)이 3일 공개한 보고서 ‘북한의 식량 안보 평가’에 따르면 북한의 올해 식량 사정은 최근 10년 사이에 최악이다. 외부로부터 136만톤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인당 하루 380g이던 식량 배급량은 올해 300g으로 줄었고, 북한 인구의 약 40%인 1,010만명이 식량 부족 상태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올 2월 유엔에 공문을 보내 산하 국제기구들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미래는 더 어둡다. 북한 기상수문국(기상청)의 방순녀 처장은 17일 “올해 1월부터 5월 15일까지 전국적인 평균 강수량은 56.3㎜로 평년의 39.6%”라며 102년 만에 가장 적은 양이라고 밝혔다. 난관은 가뭄뿐 아니다. 전기ㆍ연료가 모자라 농지에 제대로 물을 대지 못하고 대북 제재 탓에 농사에 필요한 비료와 농약, 장비 등을 조달하는 데에도 곤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조심스럽지만 정부는 이런 상황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통일부는 이날 “ASF 확산 방지를 위한 남북 협력 추진 의사를 오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협의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며 “내부 검토 뒤 관련 입장을 알려주겠다는 게 북측의 반응”이라고 밝혔다. 지금껏 남측의 협력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현재 개성 연락사무소에서는 2ㆍ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뒤 13주째 소장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여당은 정부보다 더 급한 기색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 내 ASF 발병과 관련, “우리 군과 통일부가 우리가 지원 가능한 게 무엇인지 북과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고, 설훈 최고위원은 “북한이 (식량을) 가장 필요로 하는 5~9월을 넘겨서는 안 된다”며 “다음 주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에) 5만톤의 식량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북한 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 방지를 위한 남북 협력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측과 협의가 진행되는 대로 구체적 준비를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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