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 한 국도변에 세워진 이른바 전두환 찬양 기념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진보정당이 “민주주의의 수치”라며 기념비 철거를 요구하고, 대 시민 캠페인에 나서기로 하면서다. 해당 지자체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31일 의정부시와 포천시를 연결하는 국도 43호선 축석고개 입구. 높이 5m, 폭 2m 크기의 기념비가 흰색 천으로 가려진 채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진보정당 측이 “부끄러운 기념비”라며 가려 놓은 것이다.
이 기념비는 1987년 12월 10일 국도 43호선(호국로ㆍ25.8㎞) 완공 기념으로 세워졌다.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로 쓴 호국로(護國路)가 한자로 새겨져 있다.
논란이 되는 건 전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문구. 기념비 아래 녹색현판에는 “개국 이래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온 선열들의 거룩한 얼이 깃든 이 길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로 건설부와 국방부가 시행한 공사로써 ‘호국로’라 명명하시고 글씨를 써주셨으므로 이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한다”고 적혀 있다.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에선 “범죄자의 뜻을 후세에 전하라는 것이냐”며 기념비 철거를 촉구하고 있다. 민중당 포천지역위원회 회원들은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17일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기념비를 흰색 천으로 가린 뒤 그 위에 전 전 대통령의 사진과 역설적으로 표현한 ‘민주주의 아버지 공덕비’라고 적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어 천과 현수막에 붉은색 페인트를 넣은 계란을 던졌다.
회원들은 앞으로 기념비 철거를 위한 대 시민 캠페인과 함께 모금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모금된 비용은 기념비 철거를 여부를 묻는 시민 여론조사 비용으로 쓸 계획이다.
이명원 민중당 포천시지역위원장은 “전두환은 아직도 자신의 광주 학살 범죄를 자위권 발동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며 “군사독재의 잔재인 ‘전두환 공덕비’는 즉각 철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천진보시민네트워크도 지난해 5월 14일 기념비를 흰색 천으로 가리고 기념비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한 60대 남성은 흰색 천에 불을 붙이는 등 기념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잇단 철거 요구에 포천시는 난감하단 입장이다. 시가 지난해 기념비 이전을 위해 사업비 700만원을 편성했지만, 시의회가 “이전이 아닌 철거를 해야 한다”며 관련 예산 전액을 삭감하면서 기념비 이전은 중단됐다.
시 관계자는 “흑역사도 역사이기 때문에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모든 시민들이 철거를 원하는 것은 아니고 존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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