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잼고미’가 되어 주세요.”
반달곰 ‘잼고미’는 백색증에 걸려 가슴에 하얀 반달 무늬가 보이지 않는다. 온몸이 하얀 털로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반달곰이 아니라며 잼고미를 따돌리고 놀리기 일쑤다. “나는 누구지?” “왜 이렇게 태어났지?” 잼고미의 고민은 날로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잼고미에게 속삭인다. “지구 북쪽 끝에는 너와 비슷하게 생긴 곰이 산대.” 잼고미는 그 말에 의심도 없이 북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잼고미의 여정에는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다. 각 기업이나 단체의 브랜드(혹은 로고)를 디자인하고 캐릭터를 개발하는 일을 하는 콘텐츠 디자인 그룹 ‘브이노마드’가 전개하는 프로젝트다. 우울증 등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잼고미는 ‘브이노마드’가 창조한 캐릭터다.
홍익대에서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한 동기 3명이 의기투합했다. 사업도 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이한나(35) 공동대표는 “일반 기업을 다니면서 디자인과 관련해 오랫동안 재능기부를 했다”며 “결국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아예 재능기부하며 사업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인 심상미(36) 공동대표와 함께 잼고미를 토대로 사회적기업을 운영해보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2017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지원해 선정됐다.
‘AI로봇’ 잼고미가 고민을 해결해준다면
두 사람은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사무실을 차리고, 디자인 및 영상 작업을 위해 또 다른 친구 송라헬(36) 디렉터를 찾았다. 독일 베를린에서 7년째 유학 중이던 송 디렉터는 두 친구의 사회적기업 운영 계획을 듣고 짐을 쌌다. 특히 잼고미를 통해 개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아픔을 함께 한다는 콘셉트가 마음에 와 닿았다. 송 디렉터는 “저 역시 오랜 유학생활로 우울감에 빠져 있었는데 잼고미 프로젝트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일에 회사 근처 홍익여고를 찾았다. 커다란 잼고미 탈을 뒤집어 쓰고 교문 앞에서 ‘허그’ 행사를 펼쳤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일일이 안아줬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행사에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 대표는 “학생들이 친구들과 통화하면서 ‘잼고미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하더라. 순간 이곳이 랜드마크가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며 흐뭇해했다.
고민을 들어주고 아픔을 나누는 캐릭터인 잼고미는 현재 웹툰으로 제작돼 잼고미 계정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연재되고 있다. 또 카카오톡이 운영하는 플랫폼 ‘브런치’에 잼고미의 ‘고민해보고서’를 운영하며 웹툰보다 더 깊이 있는 고민 상담을 해주고 있다.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무료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브이노마드는 더 나아가 잼고미닷컴 사이트도 오픈해 커뮤니티를 만드는 등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공유할 예정이다. 고민 많은 사람들끼리 워크숍을 떠나는 등 여러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활용할 계획이다.
심리 상담을 해주는 인공지능(AI) 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현재 잼고미 캐릭터를 활용해 스마트 조명을 제작했는데, 여기에 AI를 결합해 고민 상담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여러 가지 고민을 담은 스토리를 모으는 게 급선무다. AI가 심리상담가 역할을 하려면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심 대표는 “이용자가 밤에 자기 전에 ‘잼고미, 이야기 들려줘’하면, 기분 상태에 따라 조명 색깔이 바뀌면서 AI가 옛날 동화나 고민 해결 콘텐츠를 읊어주는 것”이라며 “여러 고민이나 상담 내용 등 데이터를 계속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업무에서도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꿈꾸다
브이노마드에게 잼고미는 업무와도 연결된다. 예를 들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브랜딩 기획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에 클라이언트(의뢰인)와 직원들을 참여시킨다. 회사를 알고 자신을 알아야 제대로 된 브랜드나 프로젝트가 완성된다고 본 것이다. 잼고미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스타트업이나 소셜 벤처들은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미션 공감ㆍ소통의 어려움이 있어요. 일단 브랜드를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면, 우리가 개발한 브랜드 워크숍에 참여시킵니다. 브랜드 컨설팅뿐만 아니라 회사와 나에 대한 이해를 통해 스토리를 찾아가게 하는 것이죠. 4시간 워크숍을 세 번 정도 하는데 끝날 때쯤이면 그분들이 회사 브랜드의 전문가가 돼 있어요.”(심상미 대표)
브이노마드는 ‘디자인 씽킹 워크숍’을 통해 깊이 있는 컨설팅을 수행한다. 한 번은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진행할 프로젝트를 구상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브이노마드는 학생들을 디자인 씽킹 워크숍에 참여시켰다. 팀을 구성해 프로젝트 예산을 짜게 하는 등의 과제를 줬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끼리 서로 잘 몰라 어색해하며 의견을 나누지 못했다. 워크숍을 통해 학교와 친구들에 대해 알아가고 공유하면서 프로젝트를 완성해갔다.
심 대표는 “예비 창업자들도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한 스타트업 대표는 육아와 일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를 몰라 힘들어했다”며 “워크숍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고민을 해결해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브랜딩도 결국 ‘나는 누구인가’ ‘우리 서비스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라며 “잼고미처럼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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