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美와 관계 다진 뒤 북한ᆞ중국에 접근
외교 입지 좁아진 한국엔 연일 과거사 압박
한미일 안보동맹 복원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후 도쿄 료고쿠(兩國) 국기관을 방문, 스모 경기를 지켜본 뒤 우승자에 대한 수여식을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스모 씨름판(도효·土俵)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일 정상의 ‘도쿄 밀월’에 맞춰 한국에 대한 일본의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외교적 언사라 할 수 없는 직설적 표현으로 한일 관계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집권 자민당과 참의원 외교ᆞ방위위원장은 노골적으로 6월말 오사카 G20 정상회의 시 한일 정상회담 개최 불가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의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선결 조건으로 연계시킨 것이다. 심지어 우리 의원 외교단을 초선 의원 1명이 상대케 하는 홀대도 서슴지 않았다. 물밑 대화 채널인 의원 외교가 이 정도면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일본의 강경 태도에는 여러 배경이 있다. 우선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의 근간인 한일 청구권 협정이 무력화하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가 무대응 원칙으로 한일 관계를 방치한다는 불신이 겹쳤다. 이런 불신은 역대 한국 정권들이 과거사 문제 등 한일 관계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며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였다는 일본의 경험칙이 더해져 극대화하는 양상이다. 한국 정부는 믿을 수 없으니 차제에 과거사 문제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이런 인식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이 우리 정부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은 실리적 계산이 작용한 결과다. 미중 사이에 끼이고 북한이 외면하는 사이 고립돼 버린 한국 외교의 어려운 상황을 틈타 동북아에서 일본의 영향력 확대와 국익 극대화를 노리는 것이다. 한미 동맹 관계가 역대 정권 이상으로 탄탄하고, 남북 관계가 신뢰 속에 술술 풀려나가는 동시에 한중 관계가 상호이익 관점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고 있다면 일본이 우리 정부를 이토록 안하무인격으로 대하진 못했을 것이다. 한국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과거사 문제 등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아베 정권의 치밀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북미 싱가포르 회담 전후만 해도 일본은 남북미의 세기적 이벤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미국 문을 두드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10차례나 성사시키며 한반도 문제에서 역할 공간을 모색했고, 결국 11번째 회담에서 북일 정상회담 지지를 끌어냈다. 그러곤 바로 ‘조건없는 북일 정상회담’ 제안 소식이 나왔다. 이어 중국과의 긴장 완화 및 관계 개선을 위한 중일 장관급 ‘외교ᆞ방위 각료협의체’ 추진 보도가 이어졌다. 미일 동맹을 굳건히 다진 토대 위에서 북한과 적극 대화에 나서는 한편, 미국과 패권 경쟁 중인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하려는 일본의 모습은 우리 외교가 처한 현실과 대조적이다. 한국의 좁아진 외교적 입지를 파고든, 얄밉지만 치밀하고 한편으론 무섭기까지 한 외교술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다. 2년간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한미ᆞ남북 관계 중심의 외교를 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미국과 북한 위주의 외교ᆞ안보 전략에도 수정이 필요해졌다. 한일 관계, 나아가 한중 관계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하기엔 상황이 엄중하다. 종전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하며 관계 개선을 촉구해온 미국과 적극 협력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미일이 공통된 목표, 즉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범하게 삼각 안보동맹을 복원하는 것이 긴요하다. 한미일 삼각동맹의 틀 안에서 과거사 등 다양한 현안 논의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모색해 가는 것이 양자 간 해결 시도보다 용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굳건해진다면 한중 관계에서 제대로 우리 목소리를 낼 여지도 많아질 것이다. 쉽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변 열강과의 외교전, 남북 관계 등에서 우리는 낙오할 수밖에 없다. 4일 동안 ‘오모테나시’ 외교로 미국과 관계를 철저히 다지는 아베 총리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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