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트라
앤서니 서머스 등 지음ㆍ서정협 등 옮김
을유문화사 발행ㆍ840쪽ㆍ2만8,000원
한국 영화 ‘친구’(2001)에는 부산 조폭의 중간 간부 준석(유오성)이 오랜만에 만난 고교동창과 함께 주점에서 팝송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조폭으로서 나름 자기 길을 가겠다는 다짐처럼 노래가 들리는데, ‘마이 웨이’의 가수 프랭크 시내트러(1915~1998)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섬뜩해진다.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인 시내트러는 마피아 연루설이 종종 불거졌던 인물이다.
시내트러는 이탈리아계다. 정확히는 시칠리아인의 피를 이어받았다. 할아버지 프란체스코는 형벌 같은 가난을 피해 마흔 언저리에 미국 뉴욕으로 둥지를 옮겼다. 시내트러의 이름 프랭크는 프란체스코의 영어식 표현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넘겨받은 시내트러는 뿌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뿌리였던 시칠리아는 잘 알려졌다시피 마피아가 태동한 곳이다.
책은 시내트러의 정체성 상당 부분을 결정한 시칠리아와 마피아를 키워드로 서두를 연다. 시내트러는 생전 마피아와의 연계설을 부인했으나 책은 조부 프란체스코의 시칠리아 거주 시절까지 추적하며 반론을 제시한다. 프란체스코의 고향은 시칠리아 레르카라 프리디다. 20세기 가장 유명한 마피아인 럭키 루치아노가 태어난 곳이다. 루치아노의 부모가 결혼하고 루치아노가 세례받은 교회에서 프란체스코도 결혼식을 올렸다. 루치아노 부모와 프란체스코의 구체적인 인연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소규모 집단에서 양쪽이 전혀 모르고 살 리는 없었으리라 책은 추정한다.
20세기 초만 해도 이탈리아인들은 미국에서 백인 취급도 받지 못했다. 시내트러는 이탈리아인에 대한 차별과 위협이 일상인 환경에서 자랐다. 가난했던 부모는 금주법 시절 술집을 운영(마피아 연루설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하며 부를 축적했다. 난산 끝에 태어난 외동아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시내트러가 15세 때 중고 크라이슬러 컨버터블을 사주었고, 아들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고교를 중퇴한 이후 가수의 꿈을 키울 때도 적극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가수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던 시내트러는 여러 밴드와 클럽을 거치며 실력을 쌓았다. 소극장에서 자신만의 팬덤을 형성해 가던 그는 1942년 말 대형 공연장 파라마운트 극장에 오르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청중은 무대에 오른 시내트러를 보고 “프랭키”를 길게 외쳤다. 이후 프랭크는 파라마운트 극장 무대에 계속 올랐고, 어린 여성 인파들이 객석으로 밀려들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스커트와 스웨터를 입고 하얀 양말을 신은 ‘보비삭서’가 대부분이었다. 시내트러는 하루에 백 곡 넘게 불러야 했고, 어린 관객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객석에서 종종 소변을 봤다. 스타를 넘어 아이돌의 탄생이었다.
책이 펼쳐내는 시내트러의 삶은 매우 입체적이다. 난봉꾼이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여성 편력이 심했다. 네 차례 결혼했고, 수많은 여자 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종종 마피아 연루설에 시달렸고, 군입대 기피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시내트러는 민주당을 위해서라면 어떤 활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존 F. 케네디의 대선 운동에도 그는 적극적이었다. 시내트러와 함께 일했던 이탈리아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진 디노비의 말은 시내트러의 다면성을 잘 보여 준다. “이탈리아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바로 럭키 루치아노이거나 미켈란젤로다. 프랭크(시내트러)는 예외다. 그는 둘 다다.”(165쪽)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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