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철거된 홍콩의 빈민촌, 구룡성채. 홍콩 정부가 수용을 거부한 난민과 베트남 보트피플 등이 모여 사는 막장 같은 곳이었다. 20세기의 마지막 무법지대로 불릴 만큼 흉흉한 그곳에서도 삶은 꾸역꾸역 이어졌다. 주민이 5만명에 달했다.
조남주 작가의 새 장편 ‘사하맨션’ 속 사하맨션은 구룡성채를 모티브 삼은 가상의 공간이다. 국가로부터 반품당했거나 애초에 반입되지도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차별받는 여성들의 삶을 건조하게 고발한 조 작가가 이번엔 공동체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을 다룬다.
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민음사 발행ㆍ372쪽ㆍ1만 4,000원
소설의 배경은 기업이 인수한 가상의 도시 국가인 ‘타운’이다. 경제력과 전문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사람만 타운의 주민권을 얻을 수 있다. 사하맨션에는 주민권은커녕 2년간 임시로 타운에서 살 수 있는 체류권도 얻지 못한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 산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친 남매 ‘진경’과 ‘도경’은 마지막 은신처로 사하맨션을 택한다. 힘들고 보수가 적은 일에만 종사할 수 있고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할뿐더러 차별도 감내해야 하지만 진경은 사하맨션의 삶에 적응해 나간다. 도경이 타운의 주민이자 소아과 의사인 ‘수’와 사랑에 빠지고, 수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사하맨션과 타운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무너진다. 사라진 도경을 찾기 위해 타운으로 향한 진경이 맞닥뜨린 진실은 인간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기준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알려 준다.
‘82년생 김지영’이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에 주목했다면, ‘사하맨션’에선 조 작가의 시선이 닿는 반경이 한층 넓어졌다. 밀입국자와 노인, 여성, 아이, 성소수자, 장애인까지 사회적 약자 전반을 아우른다. 낙태 시술 사고로 도망친 ‘꽃님이 할머니’, 보육사가 되고 싶었지만 신분의 벽에 가로막힌 ‘은진’,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었던 ‘사라’… 바깥 세계에서는 차별받고 소외된 존재인 이들은 사하맨션 안에서 연대와 사랑으로 서로를 끌어안는다. 조 작가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주류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에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썼던 조 작가가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돌아온 것은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 작가는 “제가 속한 공동체나 한국사회가 뭔가 문제를 잘못 풀어가고 있다는 의문과 공포에서 ‘사하맨션’을 시작했다”면서 소설이 현실을 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소설에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정권 교체 등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굵직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낙태, 결혼 이주, 육아와 경력단절 등 다양한 여성 문제도 건드린다.
사이를 가르는 외벽을 설치하거나 외벽 색깔을 다르게 해 아파트의 분양동과 임대동을 구분한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임대동 주민이 분양동으로 올라갈 수 없도록 엘리베이터를 설계했다는 마포구의 아파트와 임대동과 분양동 아이들의 반을 따로 편성해 달라고 학교에 요구했다는 중구 학부모의 사연… 계층 간 공존 사회를 지향한다는 취지로 건설된 혼합주택 아파트와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실화들이다. 구분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는 사람들일까. 조 작가가 ‘사하맨션’을 쓰는 데는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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