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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거기야?] 드라마 ‘사의 찬미’ 속 서양건물에 숨겨진 사연

입력
2019.05.31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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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남구의 ‘우일선 선교사 사택’ 

광주 남구 양림동 양림산 자락에 자리한 우일선 선교사 사택. 한국의 전통건축과는 달리 현관이 남향에 위치하지 않고 동향으로 된 것이 특이하다.
광주 남구 양림동 양림산 자락에 자리한 우일선 선교사 사택. 한국의 전통건축과는 달리 현관이 남향에 위치하지 않고 동향으로 된 것이 특이하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그의 애인이자 천재 극작가인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과 함께 알려지지 않은 김우진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한 SBS 드라마 ‘사의 찬미’. 지난해 12월 방영 당시 주인공들이 연극 연습을 하던 서양풍 건물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 곳은 광주 남구 양림동의 해발 108m짜리 야트막한 양림산 자락에 자리잡은 우일선(미국명 로버트 윌슨ㆍ1880~1963) 선교사 사택이다. 1904년 양림동에 정착한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가져와 심은 피칸, 흑호두, 은단풍 나무가 숲을 이뤄 건물을 둘러싼 풍경이 매우 이국적이다. 호남신학대로 가는 길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언덕 끄트머리에 위치한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으로, 광주시 지정 기념물(제15호)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우일선 선교사 사택 모습. 1904년부터 이 곳에 정착한 서양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가져와 심은 흑호두, 은단풍 나무가 숲을 이뤄 주변 풍경이 이국적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우일선 선교사 사택 모습. 1904년부터 이 곳에 정착한 서양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가져와 심은 흑호두, 은단풍 나무가 숲을 이뤄 주변 풍경이 이국적이다.

이 건물은 1908년쯤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이 지었다는 얘기만 전해질뿐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일선 선교사는 1905년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그 해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

평면이 정사각형인 이 사택 1층은 거실과 가족실, 다용도실, 부엌, 욕실로 구성돼 있다. 2층엔 침실, 지하층엔 보일러실이 있다. 한국의 전통건축과는 달리 현관이 남향에 위치하지 않고 동향으로 된 것이 특이하다. 창문의 외부는 여닫이창, 내부는 오르내리창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고, 1층과 2층을 구별하기 위해 벽돌로 돌림대를 두었다.

벽은 두께 55mm의 회색벽돌을 사용해 네덜란드식 쌓기로 돼있으며, 내부는 회반죽으로 마감하고 고막이 부분 처리는 화강석으로 쌓았다. 개구부(開口部)는 모두 반원아치를 만들어 벽돌마구리 세워 쌓기로 했다. 우일선 선교사와 가족들은 이곳에서 살면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1986년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남노회유지재단에 이를 넘겼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으로 소풍 나온 시민들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으로 소풍 나온 시민들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들어선 곳은 돌림병에 걸려 숨진 어린 아이들이 버려지는 풍장(風葬)터였다. 비바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사체를 건조하던 장소였던 탓에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고, 짐승들만 몰렸다. 이처럼 모두가 외면했던 땅에 우일선 선교사 등이 집을 짓고 살면서 전염병이나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다. 특히 우일선 선교사는 1908년 제중원(현재 광주기독병원) 원장으로서 의료 선교활동을 펼쳤다. 선교사들이 사택을 짓기 시작한 이후 주검이 나뒹굴던 이 언덕은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며 치유와 교육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실제 양림산 산턱과 산자락 곳곳엔 서양 선교사들이 터를 잡고 세운 사택, 교회, 학교, 병원 등이 많아 광주 근대사의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네로 손꼽힌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옆 호남신학대 음악관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가면 호남지역에서 순교한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선교사 묘역도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우일선 선교사 사택

주민 김용수(50)씨는 “거의 매일 우일선 선교사 사택 주변을 산책하는데 이곳에 풍장터 사연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우일선 선교사의 헌신적인 사랑이 더욱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광주=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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