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과 언론의 외국어, 외래어 선호 때문에 온 국민들이 한 달 넘게 낯선 외래어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매일 같이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는 광풍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국회법’ 85조 2의 ‘안건의 신속 처리’를 달리 이르는 것으로, 국회에서 중요성과 긴급성이 있는 특별한 안건을 빠르게 처리하도록 한 법적 절차를 뜻한다. 영어 과시욕에서든 눈길을 끌기 위한 목적에서든 본래의 쉬운 말을 두고 어려운 외래어를 남용한 것은 크게 실망스럽다.
외래어 남용은 국민들의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영어를 잘 아는 젊은이들도 사전을 찾아보지 않으면 ‘패스트 트랙’이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보면 가슴부터 답답해진다. 특히 뉴스에서 ‘패스트’의 ‘ㅍ’을 한국어 입술소리가 아니라 아랫입술과 윗니 사이에서 나는 영어의 ‘f’ 소리로 발음하는 것을 들으면 심한 거리감과 거부감이 든다.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말을 그대로 우리말과 섞어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2000년 전후에 불어 닥쳤던 영어 공용어화 광풍이 또다시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법을 다루는 국회의원들이 처음부터 ‘패스트 트랙’ 대신 ‘안건의 빠른 처리’, ‘빠른 처리 안건’이라는 쉬운 우리말을 썼다면 신문과 방송을 접하는 국민들의 눈과 귀가 조금은 편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패스트 트랙’이라는 말 때문에 정작 중요한 법안의 내용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낮아진 느낌이다. 이 말을 보거나 들으면 선거제 개편안, 공수처 설치 법안이라는 개혁 법안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여야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던 장면만 자꾸 떠오른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