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의 합리적 액수를 산정하는 손해사정 업무가 보다 소비자 친화적으로 개편돼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금융당국과 관련 업계가 협의 중인 개정 가이드라인엔 소비자가 직접 선임한 손해사정사를 보험사가 거부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히 하고 손해사정 비용을 보험사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다만 보험업계는 이번 조치로 영세업체들이 대거 손해사정에 개입하면서 보험사기 등 부당행위가 횡행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30일 보험업계와 손해사정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생명ㆍ손해보험협회, 손해사정사회 등 유관 단체들은 ‘공정한 손해사정 관행 정착’을 목표로 2017년 초 발족한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손해사정업체 위탁에 관한 새로운 모범규준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6월 중 윤곽이 마련돼 하반기 혹은 내년 상반기 중 실손의료보험을 시작으로 모범규준이 확대 적용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로 마련될 손해사정 개선 방안의 핵심은 고객이 직접 손해사정사를 선임할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보험사들은 대부분 업무 효율을 명분으로 손해사정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두고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와 소비자단체는 보험사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손해사정사가 보험금 규모를 축소하는 등 보험사에 유리한 사정을 한다고 비판해 왔다.
현재도 고객이 독립 손해사정사를 선임하는 것은 가능하며 보험사도 손해사정 개시 전 이를 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객이 손해사정사를 직접 구해 사정 업무를 의뢰하기는 쉽지 않다. 보험사는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고객의 손해사정사 선임에 동의하지 않을 권한이 있고, 소비자는 보험사 동의가 없는 경우 선임 비용을 직접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 손해사정사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도 선임의 걸림돌이다.
이런 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공개한 보험업 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보험사가 고객의 손해사정사 선임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분명한 기준을 마련하라는 조항이 담겼다. 다시 말해 TF가 마련할 가이드라인에 보험사가 소비자의 손해사정사 선임을 거부할 수 있는 요건을 제한하라는 의미다.
TF에서는 고객이 선임한 손해사정 비용의 지불 주체를 고객에서 보험사로 변경하는 방안과 손해사정사에게 지불하는 수수료의 적정 수준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수료 수준 등은 업계 간 입장차가 완전히 조율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험업계에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고객이 선임한 손해사정업체가 공정한 사정을 하면 좋겠지만, 일부 업체는 수익성에 집중해 ‘보험금을 더 받아주겠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며 “지급 분쟁이나 보험사기로 전개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독립 손해사정업체는 대부분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역량을 확신하기 어렵다”며 “사정 결과가 부실해 결국 보험사가 또 다시 손해사정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추가 비용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해사정업계는 이런 우려에 대응해 역량을 검증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손해사정사회는 손해사정업체의 인력 보유, 경영 실적, 징계 등의 현황을 자율 공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시범 운영 중이다. 손해사정사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고객들이 접할 수 있는 손해사정 관련 정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손사업체들도 공시 의무는 없지만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는 의미로 적극 공시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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