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나’ 남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요. 왠지 모르게 뭉클했고 한편으로 뿌듯했습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삶을 반추하는 거울은 될 수 있다. 배우 이동휘(34)가 영화 ‘어린 의뢰인’(상영 중)으로 관객을 만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이동휘는 “‘어린 의뢰인’은 불편해도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라며 “영화의 진정성을 관객에게 잘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린 의뢰인’은 2013년 한국 사회를 공분에 들끓게 한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두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학대해 온 계모가 당시 여덟 살이던 둘째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하고, 첫째 딸에게 동생을 때렸다는 허위 진술을 하도록 강요한 사건이다. 영화에서 이동휘는 살인 피의자가 된 소녀를 도와 진실을 밝히는 변호사 정엽을 연기한다. 그는 “영화 속 설정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며 “고통 속에서도 용기를 내 계모를 연기한 유선 선배가 있었기에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주로 부모다. 그래서 타인이 개입하기 어렵고 쉽게 감춰진다. 정엽의 각성은 관객의 각성으로 이어진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져야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좋은 이웃이 누군가에겐 영웅일 수도 있어요. 정엽을 통해서 약속을 지키는 어른,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정엽에게는 이동휘 자신도 투영돼 있다. 그는 “정엽이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이어야 관객이 이야기에 몰입해 스스로 질문할 수 있다”며 “정엽은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했다.
작품과 캐릭터를 대하는 이동휘의 시선이 한층 넓고 깊어졌다. 2017년 11월 영화 ‘부라더’ 개봉 이후 숨 고르기를 했던 1년여간 그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온 것일까. “굉장히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응답하라 1988) 이후 많은 제안을 받아 기쁘게 연기해 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꿈틀거림이 느껴졌어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잠시 고민해 보자 싶었죠. 저 자신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연기를 왜 하는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휴식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매력적인 시나리오가 그를 스크린에 불러냈다. 올해 초 1,600만 관객을 모은 ‘극한직업’이다. ‘극한직업’의 출연을 논의하던 즈음, 친한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그 집에 있던 시나리오 한 권을 읽고 일면식도 없던 감독에게 먼저 연락해 조심스레 출연을 자청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국도극장’이다. ‘극한직업’ 촬영 중에 ‘어린 의뢰인’ 출연 제안을 받았고, 차기작 ‘더 콜’까지 숨 가쁘게 이어졌다. “특히 ‘어린 의뢰인’을 촬영하면서 배운 게 많아요. 아이들의 천진하고 밝은 에너지를 보며 연기하는 설렘을 다시 느꼈죠. 어쩌면 그 모습이 내가 돌아가야 하는 초심이 아닐까 생각해요.”
스크린 속 이동휘는 더없이 유쾌하지만, 스크린 밖 이동휘는 진중하다. 그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가혹하다. 그래서 연기를 하는 매 순간 치열하다. 애드리브처럼 보이는 장면도 애드리브가 아니다. “공부 안 했다면서 시험 잘 보는 친구 있잖아요. 저는 그 말 안 믿어요. 노력 없이는 성취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동휘는 “가치 있는 이야기라면 역할 크기나 현장 여건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4년 전 영화 ‘도리화가’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작은 역할이지만 최선을 다했죠. 그때 기억을 떠올린 제작자가 ‘극한직업’에 불러 주셨어요. 평소 열심히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았죠. 연기만큼 삶도 잘 꾸리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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