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꼬투리로 언제든 관세 폭탄… 무역협상에서 지렛대 활용할 듯

미국 재무부가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감시망을 넓히고 지정 요건을 완화함으로써 교역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국가에 상계관세를 물리겠다는 미 상무부의 경고와 맞물려 환율을 지렛대 삼아 통상 압박을 강화할 공산이 커진 것이다. 미중 간에 당장의 ‘환율전쟁’은 피했지만 향후 협상 추이에 따라 ‘무역전쟁’이 한층 더 격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 재무부는 이날 보고서에서 환율조작 여부를 감시할 대상국의 범위를 12대 교역국에서 대미 수출입 규모가 400억달러(약 47조5,000억원) 이상인 국가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홍콩ㆍ싱가포르ㆍ말레이시아ㆍ베트남ㆍ아일랜드ㆍ네덜란드 등이 추가되면서 대상국은 총 21개 국가로 늘었다. 특히 주목되는 건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대폭 완화한 대목이다.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기존 200억달러(약 23조9,000억원)를 유지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중을 GDP 대비 3% 이상에서 2% 이상으로 낮췄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12개월 중 8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했다.
이 같은 기준 완화는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한층 높인 것이어서 관찰대상국에 오른 나라들로선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 상무부는 최근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미국과의 무역에서 이익을 보는 나라를 ‘환율보조금 지급국’으로 판정해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전가의 보도’로 휘둘러온 고율관세를 환율 문제에 직접 연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3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환율조작국은 없었으나 기준 2개를 충족하거나 대미 무역 흑자가 큰 관찰대상국은 6개국에서 9개국으로 늘었다. 한국ㆍ중국ㆍ일본ㆍ독일은 관찰대상국 리스트에 그대로 남았고 인도ㆍ스위스가 빠진 반면 아일랜드ㆍ이탈리아ㆍ말레이시아ㆍ싱가포르ㆍ베트남이 새로 추가됐다.
그간 중국의 환율 개입에 대한 불만을 토론해왔던 미국은 그러나 이번에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무역협상 결렬로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상황 악화는 피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외환시장 직접개입은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중국이 지속적인 위안화 약세를 피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환율 개입 문제는 미중 무역협상에서 다뤄지고 있어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도 향후 협상 추이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화 약세가 대중 고율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미중 간 환율전쟁을 피했지만, 환율을 문제 삼아 언제든 ‘관세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미국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미중 양국의 신경전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책사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지난 24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자본ㆍ기술시장에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해야 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에서)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자유시장 경제와 함께 갈 수 있도록 중국의 경제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지휘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최고 권위의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통해 희토류의 대미 수출 제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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