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주미 대사관 외교관의 한ㆍ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자유한국당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외교ㆍ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정보가 통제를 벗어나 마구 유출되고 강효상 한국당 의원이 이를 정치 공세의 소재로 활용해 논란을 빚자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진상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이 먼저였던 만큼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기강 해이 행태가 일상화된 외교부의 수장과 이번 사안의 관리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주미 대사를 책망하는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발언에서 ““국가의 외교 기밀이 유출되고, 정치권이 이를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며 “변명의 여지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교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정상 통화 유출까지 국민의 알 권리라거나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ㆍ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강 의원과 한국당을 겨냥했다. 또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안보에 앞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상식에 기초한 정치여야 국민과 함께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외교부는 보안심사위원회를 열어 정상 통화 내용을 유출한 주미 외교관과 비밀 관리를 소홀히 한 대사관 직원 2명 등 3명의 중징계(정직ㆍ해임ㆍ파면)를 요구했다. 이들의 징계 내용은 오늘 열리는 외무공무원 징계위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이번 파문의 최종 책임자인 강경화 외교 장관과 조윤제 주미 대사에 대한 책임 추궁은 전혀 없어 ‘꼬리 자르기’란 비판이 적지않다. 문 대통령 역시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 철저한 점검과 보안관리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할 사람은 강 장관과 조 대사다. 특히 최근 외교부에서는 ‘국익의 최첨병이자 국격의 대변자’라는 자부심을 뒤엎는 추문과 실수가 잇달아 원로 외교관들이 “낯 뜨겁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도 강 장관 등은 자책보다 ‘엄중 처벌’ 등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하고 대통령은 그 흔한 경고조차 아꼈으니 참으로 유감이다. 이래서 기강이 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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