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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별도수당ㆍ숙소 제공… “괜찮은 치위생사 어디 없나요”

입력
2019.06.03 04:40
수정
2019.06.10 14:2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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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치과의원, 치위생사 구인난 아우성

치과치료 모습. 강남사과나무치과병원 제공
치과치료 모습. 강남사과나무치과병원 제공

서울 강남에서 30년 넘게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치과의사 A씨는 올 5월 초 취업포털에 치위생사 채용공고를 냈지만 치위생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당장 평일 야간진료와 토요일 진료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 일하고 있는 치위생사들의 눈치도 심상치 않다. 이러다가 남아 있는 치위생사들마저 그만둘까 A씨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치과의사 B씨는 다음 달 중순부터 일할 치위생사 2명이 지낼 집을 알아보기 위해 틈만 나면 치과 인근 원룸, 빌라, 오피스텔을 돌아다니고 있다. 지방 출신 여성들이라 면접 때 숙소 제공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B씨는 “숙소까지 제공해야 겨우 치위생사를 채용할 수 있다”며 “이렇게 힘들게 치위생사를 구한다고 해도 얼마나 일을 계속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강북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는 치과의사 C씨는 최근 경력 4년 차인 치위생사를 채용했다. 갑자기 치위생사 2명이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진료에 차질을 빚게 된 C씨는 새 치위생사에게 매달 별도수당 50만원을 챙겨주기로 약속했다. C씨는 “다른 직원들에게는 비밀로 했는데, 앞으로 치위생사를 채용할 때마다 별도비용을 챙겨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급 부족” vs “열악한 근로환경”

개원가의 치과의사들이 치위생사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은 “널린 게 치과라서 치위생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취직이 가능하다”며 “치위생사들이 약간이라도 처우가 나은 곳을 찾아 옮겨 다니면서 괜찮은 치위생사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치위생사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에 치석 제거, 임시부착물 장착ㆍ제거, 치아 본뜨기, 진단용 방사선 촬영 업무 등 여러 업무를 한다. 이들 없이는 치과가 돌아가기 어렵다. 이같은 치위생사 인력난은 치과의사 개인 1~2명이 운영하는 치과의원이 날로 늘어난 영향이 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0년 1만4,478개였던 치과의원은 2017년 1만7,376개로 20%나 증가했다. 치과의원은 늘어나는데 치위생사 공급이 부족하다는 게 치과의사들의 주장이다. 반면 치위생사들의 주장은 다르다. 대한치과위생사협회에 따르면 올 1월 치러진 치위생사 국가시험 합격자 수는 4,510명으로, 매년 이 정도 수준의 치위생사가 배출되고 있다. 치위생사 면허증이 있는 인원만 8만명에 달한다. 공급부족이 인력난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근무 여건이 비교적 나은 대학치과병원과 대형치과병원의 절대 숫자(231개ㆍ2017년)가 적고, 개원치과만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라고 치위생사들은 설명한다. 경기도의 한 대학치과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치위생사 이모(42)씨는 “대학치과병원은 호봉에 따라 급여가 인상되고, 연월차는 물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이 보장돼 채용공고를 내면 전국에서 지원자가 몰리지만 치과의원들은 그렇지 않아 괜찮은 치위생사를 구하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한 치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치위생사 신모(30)씨는 “4년제 치위생학과를 졸업하고 치과에 취직했지만 일반회사에 취직한 친구들에 비해 급여가 낮았다”며 “신입의 경우 많이 받아야 한 달에 200만원 정도라서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예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의 대학치과병원 신입 치위생사의 연봉 수준은 3,500만~3,700만원 정도다. 여기에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호봉이 반영돼 매년 인상된다. 치과의원 치위생사들과 1,000만원 정도 연봉 차이가 나는데다 복리후생을 감안하면 체감 격차는 더욱 크다. 치위생사 자격이 있어도 의원급 치과 취업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상당수 자격증이 ‘장롱 자격증’인 셈이다.

경력 쌓여도 나아지지 않는 처우가 문제

다른 직종과 비교해 경력이 쌓여도 처우가 나아지지 않는 점도 치위생사들이 이직과 전직을 반복하게 하는 요인이다. 경력 20년 차 치위생사 김모(46)씨는 “5년 차까지는 매년 연봉이 오르지만 그 이상이 되면 원장이 계속해서 월급을 올리는 것이 부담이 된다며 연봉 최대선을 제시하는데 이를 거절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 문제로 치위생사들이 자발적 사직을 하고 있는 점도 인력난의 원인이다. 우리나라 치위생사 90% 이상이 여성인데 출산휴가ㆍ육아휴직 등이 보장되는 대학치과병원이나 대형치과병원과 달리 치과의원에서는 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휴가나 휴직이 쉽지 않다. 치위생사협회가 지난 2018년 5,7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치과위생사 근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월차 제도를 사용하고 있는 치위생사는 27%, 육아휴직은 46.8%, 출산휴가는 60%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 마포의 한 치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치위생사 정모(29)씨는 “매년 연봉협상 시기가 다가오면 급여를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는 치과가 어디인지 수소문한다”며 “아마 모든 치위생사들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치위생사들이 ‘갑’이지만, 공급 과잉에 따른 생존경쟁에 내몰린 치과의사들은 이들의 급여를 무한정 올려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치과의사 D(45)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치위생사가 입사 1년 만에 급여가 적다고 일을 그만둔 후 1주일 만에 옆 건물 치과에서 근무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치위생사 인력난 문제를 알고 있지만 치과의사와 치위생사 간 견해차이가 심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치과의사들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구강진료조무사제도를 도입해 치위생사들만 담당하고 있는 진료보조 업무를 간호조무사들에게까지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치위생사들은 근무환경 개선 없이는 인력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장재원 복지부 구강생활건강과장은 “올 상반기 ‘치과보조 인력수급’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 단체들과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치위생사 인력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치과계에서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인데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치위생사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최저임금 보장 등의 대책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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