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이 예상치 못한 논란에 직면했다. 지난 21일 한화와 경기 중 외야수 박해민이 호수비를 펼친 뒤 바지 뒷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하는 모습이 TV 중계화면에 잡히면서다. 박해민이 본 종이는 상태 타자의 타구 분포도가 담긴 ‘사인 페이퍼’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야수들이 적절한 수비 시프트(상대 타자의 특성에 따라 펼쳐지는 변형 수비)를 위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보는 게 일반적인데, KBO리그에선 삼성이 처음이었다. 이와 관련해 일부 구단이 ‘페이퍼를 휴대하고 수비해도 되는 거냐’며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문의했고, KBO는 지난 24일 삼성에 ‘당분간 페이퍼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김한수 삼성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는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어 우리도 한 것인데, 타 구단에서 문제 삼았다고 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KBO리그 규정 제26조 2항에 명기된 ‘벤치 외 외부 수신호 전달 금지, 경기 중 외부로부터 페이퍼 등 기타 정보 전달 금지’ 조항에 해당하는지 해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경기 중 전력분석팀이 정보를 페이퍼로 전달하면 규정 위반이지만 미리 준비한 페이퍼라면 예외가 될 수도 있다.
KBO 관계자는 29일 통화에서 “페이퍼를 실제 미리 준비했는지, 경기 중 전달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허용하더라도 페이퍼 안에 어떤 내용까지 담겨도 되는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 참고용 데이터가 아니라 사인 훔치기 등 악용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KBO는 6월 실행위원회에서 허용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메이저리그는 선수들이 페이퍼를 소지하는 것에 관대하다. 야수들은 각자 수비 시프트 카드를 휴대해 틈틈이 살펴보고, 포수 역시 암밴드에 상대 타자들의 자료가 담긴 카드를 넣어 볼 배합을 가져간다. 지난해 9월초엔 투수들의 ‘커닝 시트’(cheat sheet)까지 허용했다. 당시 필라델피아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에서 필라델피아 투수 오스틴 데이비스가 투구 중 쪽지를 꺼내 보자 3루심 조 웨스트가 다가가 압수했다. 쪽지를 뺏은 이유는 ‘투수는 마운드에서 어떤 외부 물건도 소지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었다. 이에 데이비스는 “상대 타자의 정보를 보려고 들여다봤을 뿐”이라고 반발했다.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커닝 시트를 지니고 있다 꺼내 보는 건 경기를 지연시키지 않는 한 문제 될 게 없다고 데이비스의 손을 들어줬다.
데이비스의 사례처럼 삼성도 예외적인 상황이라 KBO가 결정을 내려 혼란을 줄여야 한다. 다만 현장의 생각은 각각 다르다. 김한수 감독과 류중일 LG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보는데 굳이 반대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페이퍼 소지를 찬성했지만, 몇몇 감독은 “30개 구단의 메이저리그와 10개 구단의 KBO리그는 환경이 다른 만큼 그 정도는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다 외울 수 있어야 한다”고 반대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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