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길다’는 매력적 이름의 도시다. 그러나 창춘의 봄은 짧고, 겨울이 길다. 이 역설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의 바람 탓일 게다(‘관행 중국’). 2019년 5월 하순 창춘에 갔을 때, 이 바람과 현실의 괴리를 ‘긴 봄’의 무더위로 실감했다. 계절과 날씨만큼, 만주의 중심인 창춘은 중국의 바람과 현실의 국제정치가 충돌한 장소였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창춘은 러시아의 동정철도와 일본의 남만주철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1906년 일본이 설립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철도산업을 중심으로 제철소를 비롯한 중공업까지 포괄하던 국책기업으로 사실상의 식민지국가였다. 일본의 만주 침략전쟁이었던 1931년 만주사변 이후 1932년 괴뢰국 만주국이 만들어지며, 창춘은 신징(新京)이 되었다. 만주국의 황궁을 창춘은 거짓이란 의미의 위(伪)를 붙여 위만황궁박물관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모색의 바람을 안고 창춘의 연구자들을 만났다. 창춘이 성도인 지린성(吉林省)은 북한과 1,200km 정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만주를 가로질러, 북한의 신의주와 압록강으로 마주하고 있는 단둥(丹東), 현재 북한의 경제특구인 라선까지를 철도로 연결했었다. 지린성의 지경학적 위치를 고려하며 던진 질문이 지린성과 북한의 경제관계였다. 대답은 공식적이었다. 모든 무역을 중단했고, 북한에 진출한 기업은 철수했다는 것이었다. 밀수나 밀무역을 차단하는 장치들이 국경에 설치되어 있다는 답도 들었다. 지린성의 경제는 북한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대북제재 준수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한반도 평화 과정이 재개된 2018년 3월부터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유례가 없이 네 차례나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중국이 인정한 북한의 ‘합리적인 관심 사항’인 대북제재 해제의 바람이 공식적으로는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창춘의 연구자들이 현실로 공유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된 최소공약수를 찾아보았다. 창춘의 말을 듣고 만든, 물론 개인적인 선별 해석이다. 창춘의 시선은, 역사적인 첫 그리고 두 번째의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보유의 장기화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 이유들이다. 첫째, 북한이 안보를 위해 개발한 핵무기의 포기 대가로 제공되는 체제안전보장은 북한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둘째,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아시아지역에서 미군 주둔이라는 모순적인 이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셋째,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전쟁은 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미중이 핵문제를 이 두 전쟁의 승리를 위해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중 갈등이 만든 기회의 창을 민첩하게 활용하는 순발력을 보이고 있다. 넷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신뢰와 의사소통을 담보할 수 있는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상이 필요하다. 핵확산금지체제로 북한을 재유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섯째, 한반도 비핵화 과정과 북한의 경제발전을 연동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개혁ㆍ개방이 필요하고, 개혁ㆍ개방은 중국의 경험처럼 사상 해방을 전제로 한다.
창춘에서 만난 현실은, 미약한 봄바람이 섞인 겨울의 한 자락이었다. 한반도 평화 과정의 문을 연 한 계기인 2017년 12월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에서 전쟁 불가, 한반도 비핵화, 북한문제의 평화적 해결, 남북관계 개선 등의 4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후 한반도 평화 과정 속에서 남북미중 가운데 한중만 정상회담을 열지 않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의 방식이 어우러진 소통과 대화의 바람이, 갈등 당사자들의 일방적 행동을 제어하고, 이해관계의 재구성이란 현실을 가능하게 한다. 국제정치의 참담한 현실을 경험한 봄이 오길 기대하는 도시 창춘에서의 바람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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