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는 꽃으로 예쁜 물건을 만들거나 꽃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작은 블루투스 마이크에 대고 제법 복잡한 문장을 말했다. 주변이 꽤 시끄러웠지만 앞에 있는 화면엔 곧바로 해당 문구가 한글로 나타났다. 음성인식은 정확했다. 이 서비스는 ‘듣는 것으로 인한 불편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진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이 SK그룹의 음성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전 받아 지난달 개발을 마친 ‘쉐어톡’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강사가 인터넷에 문자통역 채팅방을 만든 뒤 블루투스 마이크를 사용해 음성으로 이야기하면, 손으로 일일이 텍스트를 입력하지 않아도 문장으로 바뀐 메시지가 뜬다. 청각장애인은 개인용 컴퓨터(PC)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접속해 강의 내용을 문장으로 볼 수 있다.
28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사회적 가치 민간축제 ‘소셜밸류커넥트(SOVAC) 2019’ 행사장에서 이 기술을 직접 체험한 사회혁신 컨설팅 기업 엠와이소셜컴퍼니(MYSC)의 정재우(36) 선임컨설턴트는 “청각 장애인을 위해 음성을 보여주는 문자통역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그간 계속 있었지만 번번이 기술 장벽에 부딪혀왔다”며 “사회적 기업의 아이디어와 대기업의 기술이 만나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AUD는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기관에 먼저 선보인 뒤 청각장애인 개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애플 운영체제(iOS)에서 가능한 어플리케이션도 추가 제작하기로 했다. 전상은(28) AUD 개발본부 주임은 “현재 속기사들과 함께 강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쉐어 타이핑’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시간당 비용(7만원)이 아직까진 부담스러운 편”이라며 “쉐어톡은 관련 비용을 수천원 대로 낮춰 청각장애인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사회적 가치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OVAC에 참가한 80여개 기관ㆍ단체는 물론,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사회적 가치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서비스나 친환경 제품 생산 등 여러 활동을 통해 기업은 건강한 이윤을 추구하며 지속가능한 경영 발판을 마련할 수 있고, 개인은 의미 있는 소비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확대 재생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ㆍ새터민 등 사회적 약자의 취업을 돕는 소셜 벤처 제네베라의 이해빈(22) 매니저는 “4,000여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사회적 가치 확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가치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사회공헌 부문을 담당하는 김영연(36)씨는 “대중음악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 등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커지고 있어 이번에 SOVAC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적 가치의 시대가 온다’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김태영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이윤)를 좇는 비즈니스 혁신모델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는 우리 사회에 변화를 몰고 온 ‘빅웨이브’”라고 진단했다. 이종욱 기획재정부 장기전략국장도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기본 목적”이라며 “정부가 인권과 안전, 사회적 약자 배려 등의 방안을 담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사회적 가치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윤을 좇는 시대에서 상생을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시대로 우리 사회가 빠르게 전환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문성이나 사회적 인식 등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기업에서 우수 인력은 사회공헌 분야에 투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성미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은 “사회적 가치는 모두가 함께 가야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는데 아직까진 내 업무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는 경향이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업의 조직 구성이 그 동안에는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최적화하는 쪽으로 이뤄졌다면 이젠 사회적 가치 실현을 중심에 놓고 조직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적 가치 추구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이분법적 인식이 여전한 것도 문제”라고 운을 뗀 이 국장은 “대학입시와 입사, 승진 등 경쟁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 시스템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만큼 이번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적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상보다 두 배 많은 인원이 참가하며 이른바 ‘흥행 대박’을 나자 SK그룹은 SOVAC을 매년 열어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SK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관계자는 “뜨거운 행사 참가 열기는 사회문제 해결을 더 이상 남의 일로 여겨선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SOVAC을 매년 개최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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