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무역ㆍ기술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중국이 활로 모색을 위해 돌연 동남아 국가들에게 화해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남중국해 영토분쟁 과정에서 강하게 몰아붙이던 것과 달리, 관세철폐 카드 등을 펼쳐 보이며 ‘끌어안기’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빚 함정(debt-trap) 외교’, ‘식민지 경제’ 등의 논란을 일으켰던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서도 완급조절에 나서는 등 자국 이익 극대화에 초점 맞추던 데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28일 베트남뉴스는 베트남 수산물수출생산협회(VASEP)를 인용, 중국이 베트남의 수산물 대한 관세를 면제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면제 대상에는 베트남 특산물인 타이거새우와 랍스터 외에도 참치, 문어 등 33종으로, 남중국해 등에서 잡아 올리는 웬만한 베트남 수산물은 다 포함됐다.
VASEP은 “2017년 베트남 수산물의 대중국 수출이 전년 대비 50% 가량 증가한 13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엔 소폭 줄어들었다”면서 “중국의 이번 조치로 올해 시장에 15억달러 이상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산업은 베트남의 주요 산업으로, 수산물 수출을 통해 대중국 무역적자 폭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의 지난해 교역 규모는 1,067억달러로, 베트남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수입(654억달러)이 수출(413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적자상태다.
중국은 캄보디아에도 손을 내밀었다. 크메르타임스에 따르면 캄보디아를 공식 방문 중인 왕 야준 중국 공산당 국제부 부부장은 27일 훈센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캄보디아산 쌀 40만톤 수입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상품에 대한 중국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훈센 총리는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국은 협력을 강화해 함께 성장할 것”이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캄보디아가 불만을 품어오던 중국 자본의 캄보디아 대형 부동산 투자에서도 큰 양보를 할 뜻을 내비쳤다. 캄보디아의 경우 대형 빌딩과 각종 인프라 건설 사업이 중국의 유무상 원조로 진행 중인데 그 동안 공사 장비와 자재는 물론, 인력까지 모두 중국인으로 메워 ‘속빈 강정’ 투자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규모 프로젝트가 벌어져도 정작 캄보디아 경제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한 소식통은 “최근 들어 각종 공사에 캄보디아 현지 인부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며 중국의 달라진 태도를 전했다.
지난달 재개한 말레이시아 동부해안철도(ECRL) 프로젝트도 미국 덕분에 위세가 꺾인 중국의 해외사업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ECRL 산업은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과도한 공사비를 이유로 지난 1월 중단시켰던 것인데, 중국은 당초 650억링깃(약 18조4,000억원)에 달하던 사업비를 440억링깃으로 깎으면서 재개 허가를 받아냈다. 수혜국의 상환능력 이상으로 원조한 뒤 이익을 챙기는, 이른바 ‘빚의 함정(debt-trap) 외교’로 비난 받던 행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330억링깃까지 더 깎는다는 방침이다. 말레이 반도를 횡단하는 ECRL 프로젝트는 말레이 정부가 2016년부터 추진한 길이 640㎞의 대규모 철도사업으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중시하는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이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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