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위는 공인이라 하더라도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혐의는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권고했다.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유출해 여론재판을 하는 관행을 엄벌하기 위해 법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권고도 내놨다.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는 ‘피의사실공표 사건’을 심의한 결과에 대해 28일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엄연한 범법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지나치게 모호한 ‘예외적 공보 사유’를 마련해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피의사실공표 사건으로 접수된 347건 중 기소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분석 결과도 제시했다.
과거사위는 이어 “검찰은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공표를 통해 피의자를 압박하고, 유죄의 심증을 부추기는 여론전을 벌이는 등 관행적으로 법을 위반하고, 반대로 수사에 부담이 되면 형법 규정에 기대 언론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논란이 된 대표적 사건으로 △송두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이석기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광우병 PD수첩 사건을 꼽았다.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사건에서 언론은 2003년 9월 송 교수가 입국한 다음날부터 두 달여 동안 구체적인 혐의사실과 처벌 가능성, 검찰 내부의 의견조율 과정, 송 교수가 전향 의사를 보이지 않으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수사기관 의견까지 여과 없이 보도했다. 송 교수는 같은 해 11월 구속 기소됐지만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다. 송 교수 수사를 담당한 국정원 차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수사자료를 공표한 국회의원 등이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발됐으나 2년 후 전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과거사위는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보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별도 입법을 통해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있음에도 ‘수사공보준칙’이라는 법무부 훈령을 통해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하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사위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를 포함하는 범정부 차원의 ‘수사공보 제도개선 위원회’를 구성해 훈령 수준의 현행 공보 규정을 폐지하고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는 등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피의사실공표의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수사공보를 허용하는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본 방향도 제시했다. 과거사위는 “공판에서 입증돼야 하는 주요 혐의 사실들은 원칙적으로 수사공보 대상이 돼선 안 된다”며 “상당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자에 대해선 ‘공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원칙적으로 언론의 오보나 추측성 보도를 방지하고, 오보에 대해 해명하기 위한 공보 외에는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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