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절벽의 비극, 20대 산재 리포트] <4ㆍ끝> 위험 대물림하는 현장 
 무용지물된 안전장치 탓에 눈앞에서 금쪽같은 아들 잃어 
 끼이고 깔리고 떨어지고… ‘지옥의 현장’에서 20대 수난 
안전모와 안전화 더미 사이에 놓인 흰 국화꽃이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들을 기리고 있다. 민주노총이 과거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했던 산재 노동자 추모 결의대회 장면. 뉴시스

아들은 아버지의 권유로 건설 현장으로 왔다. 건설 현장 경력이 길었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일하게 돼 기뻤을지 모른다. 아들(이찬우ㆍ가명)이 건설 일에 뛰어든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4월 인천의 현장에서 목숨을 잃기 전에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나이 고작 22살. 아버지, 다른 건설 노동자 3명과 함께 주차타워 건축 작업을 하던 중 무려 19m 아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찬우씨는 주차장의 H빔을 세우는 작업을 주로 하는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이찬우씨에게 안전대는 지급됐지만 현장에는 안전대의 쇠고리를 지탱해 줄 설비가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당연히 마련돼야 할 안전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은 무너졌으리라. 사건을 맡은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고용센터는 망연자실한 아버지를 차마 대면할 수 없어 동료들만 조사했을 정도였다.

2018년 한 해 동안 현장 사고로 가장 많은 노동자가 희생된 직종은 건설업. 485명이 숨졌으며, 이 중 290명(60%)이 이찬우씨처럼 추락사했다. 건설업에 이어 제조업 현장에서 217명이 숨져 두 번째로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건설업, 제조업을 중심으로 떨어지고, 깔리고, 끼이는 지옥과 같은 우리나라의 산업 현장은 악명 높다.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자 비율은 유럽연합(EU)의 4.4배에 달한다. 취업난으로 건설업 등에 젊은 층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지옥의 현장’은 20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고 있다.

2018년 7월 1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설현장에 설치된 비계 위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의 모습. 홍인기 기자
 ◇건설 현장에서 목숨 잃는 젊은이들 

2018년 1월 29세 전기공 김필호(가명)씨가 목숨을 잃었다. 경북 구미시의 한 철거 현장에서 전선 확인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높이 3.5m 위에 설치된 덕트(공기 또는 가스의 이송 및 환기용 관로)가 그의 몸 위로 떨어진 것이다. 덕트의 무게는 1,934㎏(길이 48.9m)에 달했다. 김필호씨 산재 사건을 맡았던 노무사는 유족에게 취재에 응할 수 있는지 물어 달라는 요청에 “그런 제안을 하는 것 자체가 못 할 짓처럼 느껴진다”고 완곡히 거절했다. 고인은 막내이자 외동아들이었다. 누나들은 그의 사망 소식을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님에게 차마 전하지 못했다.

지난 4월 10일에는 25세 김태규씨가 경기 수원시 모 공장 신축 현장에서 문이 열려 있던 화물 엘리베이터 밖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5층의 폐자재 등을 엘리베이터로 옮기던 작업 도중 반대쪽의 열려 있던 문밖으로 추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닫혀 있어야 할 문은 성인 키 높이 이상으로 열려 있었다. 조작자 1명만 탑승이 가능한 이 엘리베이터에는 또 다른 작업자도 타고 있었고, 고층 작업자인데도 김태규씨는 현장에서 안전화, 안전벨트를 받지 못했다. 일을 시작한 지 불과 사흘째였다. 그는 수원의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계약이 만료돼 다른 직장을 알아보던 중 친형과 공사장에서 일하다 변을 당했다. 원청은 E건설이며, 그는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헤매는 절박한, 그리고 평범한 20대였다.

김씨의 누나 김도현씨는 “원래 동생은 벽돌을 쌓고 나르는 작업에 배치됐는데 첫날부터 폐기물 운반 작업을 했다”라며 “안전교육도 없이 안전모, 안전화도 지급받지 못한 채 5층에서 작업했는데 안전망마저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채 작업했고 현장에 굴러다니는 안전모를 주워 쓰고 일했다. 김도현씨는 “그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사용승인을 받지도 않은 것이었고 문이 개방된 채 운행됐다고 하니 낭떠러지에서 일한 셈”이라고 분개했다. 그는 “현장이 훼손되고 작업 동선이나 엘리베이터 운행에 대해서는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그런데도 원청회사는 가족이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야 ‘사죄하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지인을 이용해 합의만 종용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그래픽 송정근 기자
 ◇안전규정 어긴 사망산재, 벌금형으로 끝? 

경찰은 김태규씨 사건이 발생한 공사현장 소장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해 이찬우씨 사건 당시 원청 건설업체 O사 소속 소장과 고인이 속한 하청업체 대표가 같은 혐의로 입건됐다. 그렇다면 젊은 목숨을 앗아간 안전불감증 책임자들은 어느 정도 죗값을 치렀을까.

업무상 과실치사. 사람을 죽게 하는 이 범죄는 법정최고형이 금고 5년으로 법이 정한 형량 자체도 중하다고 할 수 없지만, 산재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될 경우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유가 허다하다. 이찬우씨 사건도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O사 관계자는 “이 건은 지난해 말 벌금 내는 거로 끝났고, 소장은 퇴사했다”라며 자세한 언급을 꺼렸다. 인천지법 관계자는 “이런 사건에서 원청 현장 소장이 기소돼도 합의만 하면 보통 벌금형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나 법원도 이찬우씨 건으로 기소된 사건이 현재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며 벌금 액수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업무상 과실치사의 벌금 액수는 수백만 원에 불과하다. 이달 들어서 청주지법은 안전난간과 추락 방호 망을 설치하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하게 한 업체 대표에게 벌금 700만원, 원청 건설사 현장 소장에게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지난해 9월 부산지법도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아 추락사를 막지 못한 원청업체 소장에게 벌금 500만원, 하도급업체 대표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승현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법리적으로 원청의 문제라고 인정은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라며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 투자하는 돈과 사망사고 났을 때 내야 하는 벌금을 비교해보면 후자가 오히려 저렴해 예방 투자를 하지 않는 게 더 이익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탄했다. 그는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1년에 300명 이상 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데, 사회적 인식이 마치 ‘현장 추락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정도에 머물러 있어 굉장히 안타깝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28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이마트 지하에서 에스컬레이터 점검 작업을 하던 20대가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발생해 소방 당국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남양주소방서제공=연합뉴스
 ◇기계 정비 중 사망, 원인 몰라 불안감도 

2016년 서울 지하철 구의역의 김군(당시 19세), 2017년 제주 현장 실습생 이민호군(당시 18세), 그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씨(당시 24세)는 모두 기계 점검과 정비 관련 업무를 수행하다 사망했다. 이들의 사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숨졌거나,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로 비슷한 다른 사건에 비해 좀 더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지난해 3월 28일 경기 남양주시 이마트 다산점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던 이명수(당시 21세)씨가 사망했다. 위쪽 작업자는 작동을 알리고자 ‘업’이라고 외쳤는데 정지된 무빙워크 위에 서 있던 이씨는 이 말을 듣지 못해 기계가 움직이자 곧 균형을 잃고 넘어져 아래쪽 틈에 빠졌다. 이씨가 빠진 틈은 가로 1m, 세로 40㎝, 깊이 1m 크기로, 내부에는 무빙워크의 길 역할을 하는 팔레트가 돌아가는 기기가 있다. 평소에는 덮개가 있지만, 이날은 점검을 위해 제거된 상태였다.

이런 안전점검 작업은 2인 1조가 원칙이다. 사측은 당시 위아래 총 2명이 있었기 때문에 2인 1조 원칙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유족은 “위ㆍ아래로 각각 두 사람씩 있어야 하는데 사고 당시에는 한 명씩 있었다”며 규정을 어겼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 곳에서 2명이 작업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2인 1조 근무 규정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한 것은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례에서 반복돼온 문제점이다.

지난달 3일 충남 서천군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 사망한 28세 노동자도 혼자 기계를 점검하다 변을 당했다. 두루마리 형태의 종이 완제품을 포장해 창고로 보내는 컨베이어벨트 역할을 하는 기계 중 하나인 턴테이블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현장에 있던 다른 근로자는 점검 작업과 관련성이 없어 2인 1조 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계를 자동 모드에서 수동 모드로 전환하고 점검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기계가 작동했다. 경찰은 “수동 모드에서는 기계가 작동되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근로복지공단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사건들을 보면, 이렇게 원인불명의 기계작동으로 인해 젊은 노동자가 사망한 사례들은 더 있었다. 시멘트 제품 제조업체에서 안전관리 및 검사업무를 맡았던 28세 남성은 2017년 12월 27일 공장 내 큐빙기(자동적재기)에서 콘크리트블록 표면처리(쇼트블라스트) 후 이송된 블록이 정상적으로 적재되지 않자 조작판넬에서 큐빙기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수작업을 하기 위해 큐빙기 하부로 들어가 블록을 수정하는 순간 갑자기 큐빙기가 작동됐다. 그는 몸이 끼어 사망했다.

2017년 12월 13일 국내 한 제철소에서 사망한 또 다른 28세 노동자 역시 압연기(壓延機ㆍ금속이나 강철을 눌러 강판 등을 만드는 기계)의 원인 모를 작동으로 목숨을 잃었다. 기계 설치ㆍ정비원이었던 그는 압연기 정비 중 ‘불상의 이유’로 압연기가 작동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정비를 위해 기계를 정지시켜 놓았는데도 원인 모를 이유로 기계가 움직이면서 생명을 앗아간 이들 사례는 현장 근로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시운전을 해보고 기계 움직임 로직을 확인해봐도 두 사건 모두 정확한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며 “기계에 들어가 작업할 때는 사고 예방을 위해 전원을 내리라는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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