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멋있어 보이는 마무리 투수가 꿈”
류중일(56) LG 감독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마무리 투수는 강속구와 확실한 변화구 한 가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2010년대 ‘삼성 왕조’를 열었을 때 당대 최고 마무리였던 오승환(콜로라도)을 지켜보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이다.
류 감독은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아무리 던져도 직구 하나만으로 타자를 상대하면 계속 커트 당하고, 투구 수도 늘어난다”며 “오승환 역시 2005년 신인 때는 변화구를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005년 시즌 중 불펜에서 마무리로 전환한 오승환은 이듬해부터 풀타임 클로저로 특유의 묵직한 ‘돌직구’에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더해 철벽이 됐다.
최근 류 감독은 LG의 새 마무리로 자리 잡은 3년차 우완 고우석(21)을 보며 신인 시절의 오승환을 떠올렸다. 2017년 데뷔 때부터 빠른 공을 뿌리는 기대주로 주목 받은 고우석은 좀처럼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했지만 지난달 20일 허리 부상으로 빠진 기존 소방수 정찬헌(29) 대신 뒷문을 맡아 ‘굳건한’ 마무리로 거듭났다.
4월 21일 키움전 세이브를 시작으로 27일 현재 12경기에서 2승 7세이브를 거뒀다. 13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고, 탈삼진도 13개를 뽑아냈다. 블론 세이브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류 감독은 “올해 슬라이더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줄 안다”며 “변화구 제구력이 좋아진 것이 예전과 달라진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선수 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우석은 “감이 잡힌 지는 얼마 안 됐다”며 “슬라이더가 예리하지 않았는데, 최일언 투수코치님이 지적을 하기보다 말 없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지켜본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슬라이더에 확신이 생긴 계기는 4월 28일 삼성전이다. 9회말 2사 후 박계범을 상대로 150㎞ 직구만 연거푸 8개를 뿌렸는데도 풀카운트로 맞섰고, 9구째 승부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 공은 타자 바깥쪽으로 꺾이면서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고우석은 “사실 마지막 슬라이더는 원했던 움직임이 아니었지만 ‘경기가 이렇게도 풀릴 수가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설명했다.
고우석이 뒷문을 안정감 있게 책임지면서 벤치의 신뢰도 커졌다. 정찬헌이 부상을 털고 돌아왔지만 보직 변화는 없다. LG 팬들도 ‘야생마’ 이상훈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이후 시원시원하게 강속구를 꽂는 마무리 고우석의 투구에 매료됐다. 고우석은 “강속구 마무리는 우리 팀 팬뿐만 아니라 모든 야구 팬이 좋아할 선수”라며 “오승환 선배와 이상훈 선배처럼 멋있어 보일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임)찬규 형이 ‘투수가 안타나 볼넷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리듬을 안 깨트리고 네 공만 던지면 된다’고 했는데, 왜 이런 조언을 해줬는지 이제 알 것 같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경기 중에 밸런스가 깨지면서 흔들렸지만 올해는 긴장된 순간에도 나만의 루틴이나 리듬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했다. 또한 연속 경기 무실점 행진에 대해서도 “항상 ‘한번쯤 시원하게 맞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고 나가기 때문에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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