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개표 중도우파ㆍ좌파 기존 1ㆍ2당은 유지
극우 포퓰리즘 반EU 정당들 170석 이상 차지 역대 최다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 양대 정당은 흔들렸고, 극우·포퓰리즘 세력이 크게 약진했다. 극우 세력이 기존 주류인 중도 정파를 압도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으나, 난민ㆍ실업 등의 문제로 인해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차기 유럽의회에서는 난민과 무역 이슈 등에 있어 이전보다 우경화 분위기를 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새로운 중도 세력과 녹색당의 부상으로 장기적으로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는 목표는 유지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EU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시간 27일 오후 9시 00분 기준 전체 751석 중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 그룹이 24.0%를 득표해 180석을 확보했다. 함께 연정을 구성해왔던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 그룹은 146석(19.4%)을 차지했다. 두 정당은 기존의 제1당, 제2당 자리는 유지했으나 40년 만에 처음으로 양당을 합친 의석(326석)이 과반수(376석)에 못 미치게 됐다.
한편 3개의 정치그룹으로 나뉜 극우 포퓰리즘·반난민 세력은 총 171석을 차지하며 약진할 전망이다. ‘국가와 자유의 유럽’(ENF)‘과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유럽‘(EFDD)는 각각 58석(7.7%), 54석(7.2%)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강력한 반난민 정책을 주장하는 보수 성향의 유럽보수개혁(ECR)의 59석(7.9%)까지 가세하면, 반난민 정책을 주장하는 그룹은 전체의 4분의 1에 달하게 된다. 특히 영국의 나이절 패라지가 창당한 신생 정당 ‘브렉시트당’, 프랑스의 마린 르펜이 이끄는 RN,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이끄는 ‘동맹’은 각국에서 1위 자리에 오르면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EU 정치판을 완전히 뒤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FT)는 “유럽의 극우ㆍ민족주의 정당이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면서도 “친유로 중심부는 유지됐다”고 평가했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 역시 “포퓰리즘의 조류는 높아졌지만 EU를 범람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양대 중도 정당의 세력이 크게 위축됐지만, 새로운 중도라고 평가할 수 있는 자유민주동맹(ALDE)과 녹색당이 주류 정당 빈자리를 메우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ALDE는 14.5%를 득표해 109석, 녹색당 계열은 9.2%의 득표로 69석을 각각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데, EPP와 S&D와 함께 이들이 연정을 구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EPP의 대표이자 유력한 유럽집행위원장 후보인 만프레트 베버는 “EU가 ‘중도 위축’을 겪고 있다”면서도 “극우를 포함한 연정은 꾸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녹색당 및 ALDE 그룹과 연정 구성을 위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FT는 “작은 정치 그룹에게 더 많은 레버리지가 주어질 것”이라면서 녹색당과 ALDE의 영향으로 “환경 규칙과 무역 자유화, 기술 규제 등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극우ㆍ포퓰리즘의 만만치 않은 세력이 확인된 만큼 난민 문제 등 주요 의제에서 EU 의회 내부의 불협화음 및 정책의 우경화 가능성이 예상된다. 헝가리의 정치 싱크탱크인 ‘폴리티컬 캐피털’을 운영하는 페터 크레코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극우 부상으로 유럽의회가) 우측으로 약간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 역시 “이민, 난민 문제는 중도 우파 그룹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 줄어든 이유가 그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면서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도 세력이 더 강경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류 양대 정당의 쇠퇴와 녹색당,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가 넓게 보면 ’민주주의 위기‘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학 교수는 “이번 선거 결과의 원인에는 실업 문제나 난민도 있겠지만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도 있다”며 ”불만과 증오의 목소리를 내는 극우든, 새로운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이건 기성 정치 세력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력에 기대보려는 움직임(이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흥종 연구위원 역시 “이번 선거 결과는 유럽 통합 방식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불만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중도파가 연합해 집권하겠지만 앞으로 이민, 난민 문제 어떻게 대처할지, 소득격차는 어떻게 축소할지, 어떻게 유럽 통합을 진전시켜나갈지 등에 대한 과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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