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살비니는 웃고, 프랑스의 마크롱은 수모를 면치 못했다’
23~26일(현지시간) 치러진 제9대 유럽연합(EU) 의회 선거는 유럽 정치판에서 각각 ‘극우’와 ‘중도’를 상징했던 인물의 위상을 극과 극으로 갈라 놓았다. 마테오 살비니(46)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이 극우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한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42) 프랑스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게 됐다.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국민연합에게 1위를 내줬기 때문이다.
살비니 부총리는 정치적으로 두 가지의 중요한 위상 구축에 성공했다. 이탈리아 내부에선 반이민을 내세운 극우 정당 ‘동맹(League)’의 수장 자리를 공고히 했고, EU 차원에서는 프랑스 국민연합(RN), 영국 독립당(UKIP) 등이 속한 이른바 ‘국가와 자유의 유럽(ENF)’ 정파의 맏형임을 증명했다.
ENF는 ‘반 난민ㆍ반EU’를 내세운 또 다른 극우 세력인 ‘유럽 민족ㆍ자유(ENF)’,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과의 연대를 꾀하고 있는데, 이들 그룹과의 연대가 성사된다면 EU 의석의 4분의1을 확보하게 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살비니가 미래 우파 정치의 ‘핵심 축’이라는 입지를 굳혔다”고 평가했다.
살비니 부총리는 2018년 극우 정당 북부동맹(NL)를 창당하며 이탈리아 정계의 루키로 떠오른 인물이다. 포퓰리스트 정당인 오성운동과의 연립정부를 구성, 지난해 서유럽 최초로 포퓰리즘 정부를 출범시켰다. 살비니 부총리는 “변화의 바람을 느꼈다. ‘동맹’이 승리하면 유럽에서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뒤를 이어 EU통합 진영의 수장을 자임하던 마크롱 대통령의 입지는 좁아지게 됐다. 2017년 대선과 총선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40대의 젊은 정치인에게 집권 3년 차에 치러진 선거는 국정수행에 대한 ‘중간 평가’였다. 그도 이번 선거에 대해 “1979년 첫 선거 뒤 가장 중요한 선거”라며 의미를 부여해놓고 있었던 터였다.
중도층마저 이반 현상을 보인 건 충격적이다. 노란조끼 시위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EU 선거를 통해 ‘중도층’ 유권자의 지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약화한 정치입지를 노출시키면서 향후 정국 운영에 적잖은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마크롱이 불렀던 ‘유럽의 르네상스’는 이번 선거를 통해 수모를 당했다”고 혹평했다. 유럽 공동 최저임금제 도입 등 그가 내놓았던 EU 개혁안 추진도 ‘극우 득세’ 기류가 뚜렷한 선거 결과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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