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 숨은 역사, 주민 삶 엮은 책 발간
세계 3대 광천수로 이름난 초정리(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의 숨은 역사와 문화, 주민들의 삶을 엮은 책이 나왔다.
청주문화원(원장 박상일)이 최근 발간한 ‘초정리 사람들’에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초정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문화기획자인 변광섭 청주대 겸임교수와 구술채록 및 민요 연구가인 조순현 작가가 썼다. 두 사람은 초정리 출신 인사와 초정리 거주민을 상대로 구술을 채록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구술로 초정 이야기를 풀어낸 이들은 평생을 초정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초정약수 보존에 앞장서면서 세종대왕 초정 행궁터를 찾아 나섰던 최태영(87)씨, 초정리로 시집 와 약수터에서 장사를 하며 살아 온 이복희씨, 초정 출신 시조시인 김문억씨, 먹고 살기 위해 초정리로 이사 와 목욕탕을 짓고 직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이진옥씨 등이다.
이들이 들려준 초정 이야기는 그 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 대부분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초정에 공장(당시엔 가스공장이라고 불렀음)을 짓고 약수를 일본 본국으로 약탈해갔다. 당시 일본은 초정 주민들을 가스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시켰다. 공장 바로 옆에는 일본인 사택과 신사가 있었는데, 해방되던 날 주민들은 신사에 불을 지르고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초정에서 증평으로 넘어가는 초정고개에는 일본 침략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임진왜란 때 청안현감 전유형은 이 고개에 말벌 궤짝을 쌓아 놓고 벌로 왜군을 공격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벌떼를 이용한 전투라고 한다. 고개에는 한봉수 바위도 있다. 의병장 한봉수가 일제와 싸울 때 이곳에 숨어 있다가 적들이 오면 육탄전을 펼쳐 승리했다고 전한다. 천도교 3대 교주이자 항일 독립운동가인 의암 손병희 선생은 ‘초정에 마음을 씻으니 사람은 다 평등하다’란 글을 남겼다.
초정에서는 1970년대까지 청주권에서 가장 큰 백중놀이를 열어왔던 것으로 이번 구술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백중놀이 때가 되면 탕마당(약수 원탕 앞에 있던 광장)으로 풍악놀이패가 들어오고, 씨름대회 장기자랑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졌다. 이 때는 기생집 장똘뱅이 방물장수 야바위꾼 등이 여러 날 진을 치고 살았다.
초정리에서는 마을 공동체인 동계(洞契)가 수 백년 이어져왔던 사실도 증언과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한지로 묶은 빛 바랜 동계집에는 마을 생활사와 상부상조 정신을 실천했던 내용들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주민들이 초정약수보존회를 만드는 등 약수 보호에 힘써 온 내용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초정리 원주민의 생활상과 문화적 풍경도 실었다. 초정리만의 음식과 노래, 관혼상제 등을 소개하고 있다. 초정리의 옛 풍경과 초정약수터 일원에서 펼쳐졌던 놀이문화 등도 담았다.
박상일 청주문화원장은 “초정리는 세종 행궁은 물론 백중놀이, 탕마당 추억, 항일운동 등 수많은 스토리를 간직한 고장”이라며 “구술채록을 통해 확인한 다양한 콘텐츠를 초정약수 문화관광 활성화 사업에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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