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 파리7대학 교수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개별성”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68) 파리7대학 교수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중국통’이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던 그는 1975년 중국으로 건너 가 베이징대와 상하이대에서 중국학을 배우고 중국의 대표 문학가인 루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의 철학자가 동양 철학의 본고장인 중국에 꽂힌 이유는 뭘까. 그는 “서구 사상의 뿌리를 제대로 파헤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대척점에 서 있던 외부자의 시선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진실은 내부가 아니라 바깥의 눈으로 바라 볼 때 제대로 드러난다”는 얘기다. 그는 철학의 본질을 “익숙하게 알고 있던 진리도 뒤집어 보게 하는 지적 투쟁”이라 정의한다.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내몬 40년간, 줄리앙은 동서양의 문화와 철학의 차이를 아우르며 새로운 사유 영역을 개척해 왔다. 저작 40여권 가운데 ‘전략(2015)’ ‘풍경에 대하여(2016)’ ’불가능한 누드(2019)’ 등 9권은 한국에도 번역 소개됐다. 그는 또 다른 ‘낯섦’을 대면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동아시아 의학의 가능성을 살피는 경희대 한의과대학 심포지엄에 참석하고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줄리앙을 단독으로 만났다. “만남은 중요하다. 나와 다르고 불편한 존재를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메시지다.
-세계가 난민 문제와 테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질적 문화권의 만남이 이해를 낳기보다는 반목과 폭력만 더 키우는 양상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의 만남은 충돌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 충돌과 폭력을 걱정해서 만남을 포기해선 안 된다. 만남은 다른 세계를 접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 준다. 문제는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무조건 거절하고 거부하려는 태도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세계만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마린 르펜과 같은 극우 정치인들이다. 그렇게 사고가 닫힌 사람들은 만남으로 설득하려 하기보다 걸러내는 게 맞다.”
-한국에선 타자를 무조건 배척하는 혐오 문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타자에 대한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이해하려면 나부터 독립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면 자기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 혐오가 만연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찾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 과정에서 나조차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곳에 머물려 해서는 안 된다.”
-중국 전문가로서 한국 사상과 문화를 어떻게 보는가.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개별성이다. 한국의 철학과 사상은 유럽에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음악과 영화는 매우 독창적이다. 개별성은 한국어를 지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인들이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면서 영어 교육을 중시하고 영어 사용을 확대하려 하는 것으로 안다. 그것이 한국 문화 특유의 매력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기 바란다. 한국 사회의 유연한 개방성도 긍정적이다. 사상을 통제하는 중국이나 새로운 문화를 배척하는 베트남과는 다르다.”
-‘다름’의 극단에 있는 나라인 북한은 어떻게 보나. 북한과는 어떻게 만나야 하나.
“나는 지금은 북한을 전혀 알지 못한다. 북한이 스스로를 철저하게 가둬 놓은 탓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 모습을 감춘 채 연극을 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스스로 만든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외부 세계와의 만남은 북한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서구의 보편’으로 불리는 가치를 북한에 강요하자는 게 아니다. 유럽에서 태어난 민주주의를 각 나라에서 자기의 것으로 발전시켰듯, 북한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성찰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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