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 온 에이스들, 자기 관리와 솔선수범

#KBO리그에서 20년간 최정상급 좌타자로 활약하며 ‘국민우익수’라는 별칭을 얻은 이진영이 은퇴 후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자에 ‘이진영의 오하요! 센다이’를 연재해 그가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하며 겪는 체험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지난 25일 우리 팀의 에이스 기시 다카유키가 1군 복귀전을 치렀다. 오릭스와 경기에서 그는 선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비록 팀이 역전패해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2개월 가까운 공백을 무색하게 하는 노련미에 ‘역시’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시는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을 호소해 2군에 내려왔다. 4월 초 연수를 온 나는 그의 2군 생활을 온전히 지켜봤다. 기시는 10년간 세이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다가 2017년 라쿠텐으로 이적했다. 1984년생으로 최고참급인 그는 후배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선수가 2군에 왔으니, 어린 선수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였다.
햄스트링 부상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일단 야구공을 놓고 회복에 전념한다. 그런데 기시는 2군에 내려온 첫날부터 멀쩡하게 운동을 했다. 부상 부위와 직접 관련이 있는 러닝을 제외하곤 2군 선수들과 똑같이 모든 스케줄을 소화했다. 심지어 훈련이 끝난 뒤 그라운드 정비에도 동참했다. 현장 직원들에게 맡기거나 선후배 문화가 엄격한 KBO리그에선 보기 힘든 솔선수범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선수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유망주 투수 후지히라 쇼마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1군 복귀를 앞두고 2군 실전 테스트를 거치는 날이 왔다. 일본에서도 톱클래스 투수인 기시의 투구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일본은 투수들의 투구 템포도 길고, 타자들의 맞히는 능력이 좋아서 2군 경기도 3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시가 등판한 날은 2시간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구속은 빠르지 않아 보였는데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 구사 능력이 거의 완벽했다. 후지히라 쇼마

그렇게 몇 경기를 던지고 난 뒤 1군에 돌아간 기시가 왜 잘 던질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밖에서 볼 땐 길게만 그저 긴 공백이었지만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2군에서 더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다.
기시와 ‘원투펀치’를 이루는 노리모토 다카히로라는 투수도 지금 2군에 있다. 2015년 프리미어12 한국과 준결승에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다음으로 나왔던 일본 국가대표로 우리나라에도 익히 알려진 투수다. 이 선수는 작년에 팔꿈치 수술 후 재활 중인데 역시 기시처럼 2군의 일원으로 녹아 들면서도 자기 관리와 함께 후배들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에이스 둘이 빠진 상황에서도 라쿠텐은 퍼시픽리그 1위 소프트뱅크에 0.5경기 뒤진 2위로 선전 중이다. 그런 대선수들의 노하우를 습득하고 행실을 본받은 유망주 투수들이 1군에 투입돼 공백을 잘 메워왔기 때문이다. 대우를 받으려 하기 전에 스스로 야구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는 베테랑의 품격이 팀 전체에 일으킨 시너지 효과다.
전 KTㆍLGㆍSK, 야구대표팀 전력분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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