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대외로 유출할 때는 의도 없이 그랬다고 보기 어렵다” 강조
외교부 장관, 엄중 처벌 예고… 이번 사태 조속 마무리 의도 관측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의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 유출이 의도적 행위였다고 밝히며 엄중한 처벌을 예고했다. 해당 외교관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일탈 행위로 규정하는 동시에 외교부 기강 해이 사례라는 지적을 받는 이번 사태를 최대한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주미 대사관 소속 외교관 K씨가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3급 기밀인 한미 정상 통화내용을 유출한 사건에 대해 강 장관은 업무상 과실이 아닌 고의적인 유출로 규정했다. 프랑스 파리 출장을 마치고 25일 오후 귀국해 ‘기밀을 유출한 해당 외교관이 강 의원과 짜고 폭로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쨌든 기밀을 대외적으로 유출할 때는, 그리고 여러가지 1차적 조사를 봤을 때 의도가 없이 그랬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답하면서다. 강 장관은 24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상간 통화라는 민감한 내용을 실수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흘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커리어 외교관으로서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용납이 안 된다”며 의도적 비위임을 강조했다.
강 장관이 언급한 ‘의도’는 일단 K씨가 단순 과실로 기밀을 유출했을 리는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 현직 외교관은 26일 “공무원으로서 요청에 따라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지만, 국회의원에게 업무 관련 사실을 알려줄 때는 응당 전국민에 공개될 것이라는 걸 감안하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여년간 공직생활을 한 K씨가 강 의원의 행보를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다는 측면에서 대화 내용이 공개될 것을 알면서도 진행한 고의성이 짙게 의심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K씨가 평소 대미, 대북 외교에 있어 현 정부 정책 방향성과 다소 시각차를 보였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미 비핵화 및 평화구축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된 국면에서 K씨는 주변 관계자들에게 종종 보수적인 대북관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 정부 간 이견이 있다는 논란이 일자 K씨가 이에 대한 답답함을 강 의원에게 토로하면서 통화내용을 알렸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정책과 K씨 생각과의 간극이 의도적 유출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장관이 일찌감치 K씨의 행동을 의도적이라고 단정 지은 것 역시 의도적이란 시각도 있다. 감찰 결과, 징계 여부 및 수위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사자의 고의성을 못박은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외교부 수장으로서 유출 사태에 대해 먼저 사과한 다음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하겠다’는 수준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며 “성급히 결론부터 밝히니 정부가 아랫선에만 책임을 물어 빨리 사태를 수습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고 비판했다.
외교부와 청와대의 주미 대사관 감찰은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귀국한 K씨는 이튿날부터 외교부의 추가 조사를 받은 다음 조만간 징계심사위원회 등 후속 절차를 거칠 전망이다. 감사원이 재외공관 운영실태 감사 차원에서 주미 대사관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기감사가 27일부터 2주간 진행되지만 중복 감사하지 않는 원칙에 따르면 이르면 이번 주 감찰 결과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전직 외교부 장관인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이 24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직 외교관이 기밀 사항을) 대외적으로, 특히 정치권에 누설했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될 일”이라고 지적하는 등 파장이 점차 커지고 있어 조속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K씨 뿐 아니라 해당 통화내용을 권한 없이 열람한 외교관, 그리고 조윤제 주미 대사 등 관리자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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