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러시아가 보낸 밀 도착” 친선협조관계 발전에 이바지 강조
문 정부 대북 지원엔 “부차적 문제” 한미훈련 중단·경협 이행 등 촉구
북한이 러시아가 인도주의적 식량지원 차원에서 기증한 밀을 받았다고 밝혔다. 북한은 우방인 중ㆍ러의 식량 지원에는 문을 열어두면서도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대북 지원에 대해선 “부차적 문제”라며 남북 합의의 ‘근본적 문제’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우리 나라에 로씨야련방(러시아) 정부가 밀 기증’이라는 단신 기사에서 “우리나라(북한)에 로씨야련방 정부가 세계식량계획을 통하여 기증하는 밀이 25일에 도착하였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로씨야련방 정부의 식량지원은 조로(북러)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가일층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기증된 밀의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부가 북한의 요청에 따라 지원하기로 한 총 5만톤의 밀 중 일부로 보인다. 북한 관영 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4일에도 구체적인 양을 밝히지 않은 채 러시아가 보낸 밀이 북측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지난해 5~10월 쌀 1,000톤과 비료 16만2,000여톤을 북한에 무상 지원한 데 이어 러시아도 가뭄을 겪고 있는 북한의 ‘급한 불 끄기’에 동참한 것이다.
러시아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에 양국 간 관계가 발전한다고 평가한 북한은 다른 매체들을 통해 우리 정부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선 평가절하했다.
북한 주간 통일신보는 전날 우리 정부를 향해 “북남선언에 밝혀져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차적이고 시시껄렁한 인도주의 지원과 비정치적 협력교류나 좀 한다고 일이 제대로 풀릴 수 있겠느냐”고 비난했다.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역시 같은날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평화, 번영을 바란다면 그 무슨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협력 교류와 같은 문제나 내들 것이 아니라 북남선언들에 들어있는 기본 문제부터 성실하게 이행해 나가야 한다”며 식량 지원보다는 근본적 문제, 즉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남북 경제협력 재개 등 남북 합의를 선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이 남측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평가절하하고 ‘근본적 문제’ 해결을 거론한 건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종국적으론 교착 상태에 있는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북미 대화가 진전을 보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것이 북한의 의중이란 것이다. 다만, 북한 매체들이 정부 공식 입장을 언급해 지원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대북 지원의 길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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