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인 가구 증가 등 가족 구성 큰 변화
“결혼 없이 동거로 충분”도 절반 넘어
가족다양성 뒷받침할 법 정비 서둘러야
지난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한 가족이 북한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연휴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에는 서점 직원들이 투표로 뽑는 ‘서점대상’이라는 문학상이 있다. 책에 대한 관심을 높여 좋은 책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려는 고민의 산물로, 15년 전에 등장한 이 상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 같은 여러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올해 서점대상 1위 작품은 ‘그리고, 바통을 건넸다’라는 소설이다. 주인공 유코의 가족이 일곱번이나 바뀌는 사정을 담았으니 줄거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유코는 세 살 되기 전 어머니를 사고로 잃었다. 한부모 가정이던 유코의 집은 초등 3학년 때 아빠가 리카라는 여성과 재혼하면서 변화를 맞는다. 하지만 1년 뒤 아빠가 브라질로 전근을 가게 되자 독립심 강한 리카는 따라가지 않겠다며 이혼을 선언한다. 유코는 아빠를 택해 브라질로 갈 수도, 리카와 남을 수도 있었는데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리카와 다시 한부모 가정이 된다.

“결혼 같은 건 대단한 게 아니다”라고 여기는 리카는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는 유코의 말에 한 부자와 재혼을 결정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답답하다”며 집을 나간다. 새아버지가 불쌍했던 유코는 같이 살자는 리카의 청을 거절하고 아버지 곁을 지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업 회사원인 30대 중반 남자와 결혼한 리카가 그를 데리러 온다. 다시 새아버지와 시작된 3인 가족 생활은 이번에는 2개월만에 파탄.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리카가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리카는 또 새아버지와 한부모 가정을 꾸린다.

거침없이 이혼ㆍ재혼을 반복하는 리카, 재혼 상대의 아이를 헤어진 뒤에도 거리낌없이 떠맡는 새아버지들, 그런 환경 변화에 담담한 유코 등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선의의 풍자로 읽힌다. 혈연이란 가족의 정의에 부합하는가, 가정을 지탱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가족의 형태와 구조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두드러지는 것은 가구 인구수 변화다. 1980년대에 5%도 되지 않던 1인 가구는 2015년 27.2%로 처음 주된 가구가 된 이후 계속 늘고 있다. 15년쯤 뒤에는 전체 가구의 68%가 1, 2인 가구라는 예측도 나왔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56.4%로 처음 ‘결혼해야 한다’를 앞질렀다. 전통적 이미지에서 벗어난 이런 가족들이 늘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법적 정의는 여전히 민법에 관련 조항이 탄생한 1960년에 머물러 있다. 민법 제779조는 호주제 위헌 판결 이후 손질됐지만 여전히 ‘혈족’이 근간이다. 2005년 시행된 건강가정기본법에서도 가족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제한된다. 법적 기초가 이렇다 보니 이를 벗어난 가족은 통계조차 제대로 나와 있지 않다. 가구 변화에 부응해 정부와 지자체의 복지 지원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지원의 기초가 우선 법적 가족이다 보니 사각지대가 메워지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가족부가 건강가정기본법 전면 개정 의지를 밝혔고 의원 입법으로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지난해 말 제출된 개정안의 경우 가족 개념에 ‘사실혼’을 추가하는 등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위원회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소설에서 유코의 세 번째 아버지 모리미야가 이혼 서류를 받고 이런 말을 한다. “이 서류를 내면 결혼 상대의 아이가 아니라 진짜 유코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거네. 왠지 득 본 기분.” 자신의 존재가 미안했던 유코가 그런 마음을 표시하자 모리미야가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리카가 그러더라고. 유코 어머니가 된 뒤 내일이 두 개가 되더라고. 자신의 미래와 자신보다 훨씬 큰 가능성과 미래를 품은 내일이 찾아오더라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미래가 두 배가 되는 거라고. 내일이 두 개라니 대단하지 않아? 미래가 두 배가 된다면 누군들 하고 싶지 않겠어?” 가족을 정의하는 건 진부하지만 더없이 무거운 ‘사랑’ 하나로 충분할 것 같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