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최근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이 징용 피해자 원고 측을 접촉해 의견을 청취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배경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날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일관계를 거론하고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안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사실상 “한일관계의 악화가 한미일 안보협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한일 간 레이더 조사(照射ㆍ비추어 쏨)ㆍ위협비행 갈등 이후 한일 방위협력이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방치할 경우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해양 패권에 대항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미국 측 우려라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징용문제와 관련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던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를 주도로 하는 한일관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달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회의)를 계기로 조정되고 있는 한일 국방장관 회담도 한국이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가장 중요한 과제인 북한 문제에서 미국의 협력을 얻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 개최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 “한일관계 개선을 직접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무시, 한미관계마저 악화할 경우 대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전후로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한 뒤 김 위원장의 요구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중재 외교를 도모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의 G20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 개최 요청에 대해 “징용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요청한 제3국 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 설치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은 전날 프랑스 파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다음달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라며 “그 때까지 징용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한일관계에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에 교도(共同)통신은 한국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강제징용 문제의 진전이 조건이라는 인식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최근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 이행을 전제로 재단을 설립,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잇달아 보도하면서 한국 측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는 재단 설립 방안에 대해서 “개인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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