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한국대사관 외교관이 3급 기밀인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고교 선배인 야당 의원에게 유출했다 적발됐다. 그는 7일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내용 기록을 열람한 뒤 그 내용을 9일 새벽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전달했다. 통화 내용에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 일정 논의가 포함됐다. 강 의원은 당일 기자회견을 열어 ‘굴욕 외교’ 공세를 폈다. 앞서 이 외교관은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면담 타진 등의 내용도 강 의원에게 전달했다. 있을 수 없는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다.
외교관이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될 대통령과 다른 국가 정상의 통화 내용을 정치권에 사사로이 유출한 것은 명백한 범죄다. 형법상 외교기밀누설죄가 적용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특히 가뜩이나 어려운 한반도 정세 속에서 한 외교관의 일탈이 한미 간 신뢰를 손상시켜 긴밀한 소통에 악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심각한 외교적 결례임은 물론이다. 어떤 외국 지도자가 통화 기밀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 지도자와 대화를 나누겠나. 외교부가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유출 과정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벌이 필요하다. 강 의원에 대한 조사도 반드시 이뤄져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외교관의 행위가 ‘공익 제보’라며 반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밀 유출을 어떻게 조직 내부 비리나 부정을 고발하는 ‘공익 제보’라 할 수 있나. 정부 정책에 대한 국회의원의 비판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나 그 근거 자료가 합법적 방법을 통해 얻은 것이라야 정당성을 가진다.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의원 보호하기에 급급해 억지를 부리는 것은 공당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외교부는 올해 내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외교 회담장 내 구겨진 태극기 설치,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대통령의 인도네시아어 인사말 실수, ‘발틱’국가의 ‘발칸’국가 오기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했다. 이런 기강해이가 결국 국가기밀 유출로 이어졌다 해도 외교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외교부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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