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중견 경제학자, 박상인 서울대 교수 

문재인 정부 2년간의 경제정책은 진보 경제학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면치 못했다. 물론 진보 경제담론이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ㆍ혁신성장ㆍ공정경제 등 3대 정책 기조 수립의 토대가 된 만큼, 그 자체가 아예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공통적으로 “용을 그리라고 했더니, 뱀을 그리고 있다”는 식으로 정부 경제정책을 매섭게 질타한다.

진보 경제학계의 원로인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최근 진행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 심포지엄이 ‘자성적 비판’의 무대가 됐다. 주상영 건국대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기술 혁신과 신제품 개발 경쟁이 중요하다. ‘소주성’에는 이런 생산론이 부족하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높은 소득은 높은 생산성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 최적 속도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보적 중견 경제학자다. 그는 “경제력 집중 해소와 관련된 재벌 개혁 공약은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경제력 집중이 해소돼야 혁신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와 함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현주소와 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소득주도성장 아닌 재벌개혁이 우선순위 됐어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에 관해 장인철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우리 경제가 총체적으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대통령이 어떤 판단과 생각에서 그런 말씀을 했다고 보는가. 

“첫째, 소득주도성장ㆍ혁신성장ㆍ공정경제 등 3대 정책 기조 추진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어쨌든 진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구조적 진단인 셈이다. 최저임금 등 일부 정책 부작용이 있었지만 임기 3년, 4년 차에는 긍정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둘째, 크게 보면 거시지표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 우리 성장률이 나쁘지 않다거나,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얘기는 거시지표의 좋은 면에 주목한 평가다. 그리고 참모들도 대통령의 경제 상황 평가와 판단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경제는 심리’라며 대통령께 투자와 소비 진작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말씀을 하시라고 조언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현 경제 상황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이 많다. 그런 비판이 틀린 건가. 

“나 역시 대통령의 인식이 안이하다고 느낀다. 체감경기와의 괴리는 물론, 패러다임 전환도 성공적이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저소득층의 소득과 복지를 확장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성장구조의 전환이다. 국가와 재벌 주도로 우리 경제가 이만큼 성장했지만, 이젠 한계에 직면했다는 걸 다들 안다. 그렇다면 국가나 재벌 아닌 다른 쪽에서 새로운 성장이 견인돼야 한다. 일본ㆍ독일을 보면 혁신을 통해 세계 최고 기술력과 생산성을 갖춘 수많은 중소ㆍ중견 부품업체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 경제에서도 이제 그런 혁신형 중소ㆍ중견기업들이 육성돼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재벌 시대 때 고착된 강력한 수직계열화, 다시 말해 재벌 대기업이 모든 부품 생산까지 완전히 장악해 협력업체 수익까지 통제하는 체제에선 중소ㆍ중견기업들이 혁신을 추진할 여력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중소ㆍ중견기업들을 새로운 성장의 견인차로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공정경제, 특히 재벌체제 개혁이 소득주도성장보다 우선됐어야 한다고 본다.”

 -공정경제와 소득주도성장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는 얘긴가. 

“재벌 개혁을 통한 공정경제가 실현돼야 중소ㆍ중견기업들이 자발적 혁신을 이루고, 그게 바로 진정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얘기다.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최저임금 올리면 감당 못 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거기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생산성이 더 높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근로자들을 흡수할 혁신형 일자리가 미처 생성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뜸 최저임금만 대폭 올려놓으니, 실업이 증가하고 저소득층 소득이 오히려 줄어드는 부작용이 빚어지는 것이다. 공정경제-혁신성장-소득주도성장의 순으로 추진됐어야 맞는데, 정책이 완전히 거꾸로 추진된 셈이다.”

 
 -거시지표에 대한 정부 평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적지 않다. 거시지표로 파악되는 우리 경제의 현주소는 어떤가. 

“현재 성장률 지표만 보면 OECD 평균보다 아직 괜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흐름을 보면 달라진다. 2011년 이후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 속도가 OECD 평균보다 매우 가파르다. 더 중요한 건 수출 증가율인데, 2010년까지는 우리가 OECD 평균보다 두 배 정도 높았는데, 2011년부터 17년까지 보면 OECD 평균보다 떨어진다. 제조업 가동률도 2010년 무렵 80% 초반이었는데 지금 70% 초반으로 떨어졌다. 이게 다 우리 경제가 현재 시점에서 보면 괜찮아 보이는데 흐름을 보면 상당히 안 좋은 방향으로 급속히 가고 있는 현실을 보여 준다. 지난 2년간은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에 거시지표가 그나마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성장구조 전환 필요한데, 재벌이 제조업 진화 막아 
박상인 교수가 재벌개혁을 통한 ‘제조업 진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우리 경제 활력 저하의 원인으로 제조업 경쟁력 하락이 자주 거론된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과 관련해 제조업 위기를 진단한다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30%가 제조업에서 나온다. 중국도 30%가 안 된다. 제조업 비중이 이렇게 큰 나라는 없다. 그런데 2011년을 지나면서부터 점차 제조업이 꺼지기 시작했다. 제조업 위기 요인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 경제가 이미 값싼 숙련 노동력을 전제로 한 가격 경쟁력에 기댈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나마 2000년대 중국 특수 때문에 한 10년 정도 더 갔다. 중국이 우리의 중간재와 값싼 최종재를 대량 수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1년 무렵부터 중국이 기술 수준이 높지 않은 로엔드 제품군에서 우리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현대차를 대체하는 중국산 자동차가 나왔고, 2010년부터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이 경쟁력을 얻었다. 임금 경쟁력에서 중국과 동남아 등에 뒤처지게 된 것이다. 1990년대 일본과 독일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혔다. 당시 그들은 제조업의 탈(脫)수직계열화를 진행한다. 최종재 조립은 해외로 넘기고, 국내 산업은 고부가가치 중간재로 재편되는 제조업의 진화가 진행된다. 우리가 그래야 할 단계인데 재벌체제 탓에 제조업 진화가 지체되고 있는 게 문제다.”

 -재벌 경제집중도가 해소된다 해도 역량 축적에 필요한 기간 등을 감안하면 중견ㆍ중소기업의 혁신과 진화가 바로 촉발되지는 못할 것이다. 일종의 시간차를 말하는 건데, 그 과도기엔 경제 활력이 더 떨어질 위험도 있지 않은가. 

“우려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재벌 체제를 온존시키는 건 아니라고 본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부분 재벌기업들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기업뿐 아니라, 노조도 한계를 느끼고 있다. 최근 현대차 노사가 미래 일자리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토론회가 있지 않았나. 위기감이 기업과 노조, 협력업체 공생을 위한 혁신을 추동할 수 있다. 부품업체 고도화, 인력 재배치 등에서 정부가 지원에 나설 수도 있다. 또 지금 3세 승계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승계 과정에서 재벌 개혁을 유도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현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국민 여망을 모으기 좋다는 점에서 지금이 재벌 개혁의 적기라고 보는 것이다.”

 -정의를 내세운 정책들이 당장은 민생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최저임금 과속인상, 주52시간제, 아마 재벌 개혁도 현실적 부담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불만이 많은 이유다. 정부는 불만스러운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정부ㆍ여당이 솔직해야 한다.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면 국민을 끝없이 설득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정치의 역할 아닌가.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참 묘하다. 소득주도성장 다 접어놓고도 소득주도성장 고수하겠다고 한다. ‘탈원전’도 김 다 빠졌는데, 끝까지 포기 안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바꾸는 게 옳다면 바꾸고, 안 바꿀 거면 끝까지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바꾸고도 안 바꾼 척, 안 바꾸고도 바꾼 척, 여기저기 눈치를 보니까 무얼 하자는 건지 알기 어렵게 된다. 총선 이기고 정권 재창출하려고 이런다면 권력을 탐하는 것밖에 안 되지 않나. 국민 속이자는 것도 아니고. 문재인 정부라도 그러지 말기 바란다.”

 -‘J노믹스’의 성공을 위한 건의를 한다면.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구조적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경제활력을 살릴 수 있도록 현실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나중에 책임지기 어려운 경제 낙관론을 보고하고, 뒤죽박죽 정책을 문제없다고 보고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팀부터 다시 교체해야 한다고 본다. 바꾼 지 얼마 안 됐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청와대 참모 중에 관료 출신 빼곤 경제 전문가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중간은 하겠지, 하다간 정말 우리 경제가 중병에 걸릴 수 있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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