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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스리랑카 테러 한 달… 심상찮은 ‘무슬림 혐오’ 확산, 군경도 개입했나

입력
2019.05.24 19:00
수정
2019.05.24 20:3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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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10년 전 내전 과정에서 숨진 한 군인의 유족이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족 반군 간에 벌어진 내전은 2009년 5월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그 상흔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21일 발생한 ‘부활절 폭탄 테러’ 이후 반무슬림 정서가 고조되고 있어 스리랑카는 또다시 종교ㆍ종족 간 충돌이 극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콜롬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9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10년 전 내전 과정에서 숨진 한 군인의 유족이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족 반군 간에 벌어진 내전은 2009년 5월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그 상흔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달 21일 발생한 ‘부활절 폭탄 테러’ 이후 반무슬림 정서가 고조되고 있어 스리랑카는 또다시 종교ㆍ종족 간 충돌이 극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콜롬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8일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의 힌두교계 타밀족 주민들은 2009년 내전 막바지에 벌어진 타밀족 대학살 10주기를 기억하고 추모했다. 그런데 같은 날, 10년전 타밀족을 몰아세운 진영에서는 아직 일정도 잡히지 않은 올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이가 있었다. 전 국방부 ‘서기’(스리랑카는 대통령이 국방장관직을 겸임한다)인 고타바야 라자팍세다. 그는 10년 전 마지막 학살지였던 물리바이칼의 좁은 해안가로 내몰린 타밀족 수십만명이 처참하게 죽어갈 때, 막바지 전쟁 상황을 총괄했다. 고타바야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대테러 전쟁 승리 10주년을 기념하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10년 전) 오늘 물리바이칼을 보며 고요한 환희를 느꼈다”고 밝혔다.

고타바야는 자신의 형 마힌다 라자팍세가 대통령으로 재직(2005~2015년)하던 시절, 국방부 서기 직함을 달고 군 정보국을 장악한 권력 최고 실세였다. 그의 군 정보국은 ‘트리폴리 플래툰’이라는 비밀 조직을 운영하며 비판적 언론인과 인권운동가들, 타밀 활동가들을 납치했다. 이른바 화이트밴 납치로도 불린, 일부가 강제 실종되기도 했던 그 공포스런 작전의 책임자였다는 얘기다. 2009년 1월 8일 암살당한 ‘선데이 리더’ 편집장 라산타 위크레마퉁가, 2008년 5월 22일 납치된 후 칼부림을 당한 ‘더 네이션’의 에디터 키트 노야르(현재 호주 망명 중), 2009년 1월 23일 아내와 함께 물리적 공격을 당했던 주간지 ‘리비라’의 편집장 우팔리 테나쿤(현재 미국 망명 중) 등이 트리폴리 플래툰의 손에 살해 또는 공격을 당했던 대표적 언론인들이다. 그런데 이 비밀 조직을 이끌었던 프라바트 불라트와트 소령이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스리랑카 육군 총사령관 마헤시 세나나야케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4ㆍ21 부활절 테러 진상 조사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라고 밝히면서 불라트와트를 복귀시켰다. 그는 2017년 6월 20일 키트 노야르 납치 건으로 체포됐다가 보석 석방된 상태였다.

고타바야의 이름이 4ㆍ21 부활절 테러 이후 부쩍 더 거론되는 데엔 대선 출마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지난달 30일 스리랑카 보건부 장관이자 내각 대변인 역할도 해 온 라지타 세나라트네는 “고타바야의 최측근 군인들이 (현지 자생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내셔널 타우힛 자마트(NTJ)’에 소속된 최소 26명의 대원을 국방부 비밀 계좌를 통해 물적으로 지원해 왔다”고 주장했다. NTJ는 부활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조직이다. 세나라트네 장관은 “압둘 라직이라는 NTJ 인물은 고타바야 국방부 서기 시절 사실상 군 정보국 요원이었고, 은퇴한 정보국 장교 한 명이 이 지원을 주선했다”고 덧붙였다.

이달 중순 스리랑카 곳곳에서 벌어진 반무슬림 폭동으로 군경의 경계근무가 대폭 강화된 가운데, 지난 14일 이슬람사원 공격이 발생한 코탐피티야 인근 마을 거리에서 군인들이 장갑차 주변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코탐피티야=로이터 연합뉴스
이달 중순 스리랑카 곳곳에서 벌어진 반무슬림 폭동으로 군경의 경계근무가 대폭 강화된 가운데, 지난 14일 이슬람사원 공격이 발생한 코탐피티야 인근 마을 거리에서 군인들이 장갑차 주변에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다. 코탐피티야=로이터 연합뉴스

같은 날, 라닐 위크레메싱게 현 스리랑카 총리의 민족연합당(UNP) 소속 투샤라 인두닐 의원도 “고타바야는 NTJ에 콜롬보 사무실 부지까지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타바야 전 서기와 스리랑카 정보국은 ‘NTJ 지원’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무슬림 커뮤니티를 둘로 쪼개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동안 고타바야는 2014년쯤부터 ‘안티-무슬림’ 혐오 스피치와 폭동을 주도해 온 ‘보두 발라 세나(BBS)’의 든든한 심복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그가 BBS와 대립각을 세운 무슬림 커뮤니티 내 극단주의 조직을 지원해 왔다는 두 정치인의 주장은 만일 사실이라면 대단히 위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커뮤니티 갈등에 기생하는 위험한 정치적 시나리오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을 심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제위기그룹’의 스리랑카 분석가인 알란 키난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고타바야가 군 정보국을 장악한 시절, (이슬람 극단주의 계열인) 스리랑카 타우힛 자맛(SLTJ) 멤버들을 첩자로 이용하고 지원해 온 증거는 많다. 어쩌면 이 첩자들이 무슬림과 급진적 불교도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선동가 노릇을 했을 수도 있다. NTJ는 2015년 고타바야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 SLTJ에서 분파한 그룹이다. 이후에도 군 정보국이 NTJ를 지원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15년 시리세나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정보기관 개혁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들이 무슬림과 불교계 양쪽의 극단주의자들과 관계를 계속 유지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 정확한 성격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깊이 파헤쳐 온 또 다른 분석가는 고타바야의 ‘양다리 지원’과 관련, 익명을 전제로 기자에게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NTJ는 SLTJ에서 분파된 조직이고, 이들은 이전에 ‘세일론 타우잇 자맛’이라는 조직으로 묶여 있었다. 압둘 라직은 스리랑카 군 정보국 지원을 받았다고 자백한 적이 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NTJ 인물’로 지목된 압둘 라직은 SNTJ 사무총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BBS의 대표 승려인 ‘갈라고다 아트 구나나사라’와 격렬하게 혐오 스피치를 주고받던 인물이다. 2016년 11월 혐오 스피치 선동으로 체포된 적도 있다. 그런 두 진영이 모두 고타바야의 지원 범위 안에 있었을 개연성은 스리랑카의 두 종교적 극단주의가 정치권력의 음모 속에서 자양분을 얻고 성장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걸 말해 준다. NTJ의 이슬람 극단주의는 이러한 국내 환경에 더해, ‘이슬람국가(IS)의 전성기’라는 대외적 환경도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다. 4ㆍ21 부활절 테러가 보여주듯,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일으킨 스리랑카 부활절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째인 지난 21일, 네곰보의 성세바스천 성당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당시 테러로 무려 253명이 숨졌다. 네곰보=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일으킨 스리랑카 부활절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한 달째인 지난 21일, 네곰보의 성세바스천 성당 앞에서 기독교인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당시 테러로 무려 253명이 숨졌다. 네곰보=로이터 연합뉴스

4ㆍ21 테러 이후, 스리랑카의 혼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험한 전개양상을 보이고 있다. 첫째, 무슬림 혐오의 급증 현상이다. 이는 결국 지난 13, 14일 반무슬림 폭동 사태로 이어졌다. 그런데 폭동 발생 지역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폭동 지역은 지난달 29일 육군본부가 발표한 ‘3군ㆍ경찰 합동작전명령본부(OOC)’의 작전 지역과 맞아 떨어진다. 육군본부는 4ㆍ21 부활절 테러의 발생지(콜롬보, 니곰보 등)가 속한 서부 지방, 북서부 푸탈람 지구에 OOC를 설치, 즉각 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OOC의 통제에 들어간 서부 지방 미뉴완고다에선 무슬림 사업가가 운영하는 파스타 공장이 싱할라 불교도 500여명의 공격을 받아 쑥대밭이 됐다. 45세인 무슬림 목수가 폭도들의 공격에 ‘참수 수준’의 부상을 입어 끝내 숨진 곳도 미뉴완고다이다. 스리랑카 망명기자조직인 ‘스리랑카 민주주의를 위한 기자단(JDS)’가 단독 입수해 공개한 폐쇄회로(CC)TV 동영상에 따르면, 나탄디야 지역 모스크를 공격한 무리 중에는 무장한 군경까지 섞여 있다.

두 번째, 10년 전 타밀족 대학살 현장을 지휘해 전쟁범죄 혐의를 받는 전ㆍ현직 고위 장성들이 4ㆍ21 부활절 테러를 계기로 OOC 현장 지휘관으로 대거 임명됐다. 이들은 군 병력을 배치하고, 영장 없이 수색 검문할 수 있으며, 통행금지를 발동해 민간 구역을 자유롭게 순찰하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된다. 스리랑카의 전쟁범죄를 상세히 기록해 온 ‘국제진실정의프로젝트(ITJP)’와 JDS는 지난 20일 발표한 공동 보고서에서 OOC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된 장성들 중 8명의 프로필을 상세히 분석했다. 일단, OOC 총사령관 사트야프리야 리야나게 소장부터 2009년 타밀 대학살을 현장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2015년 유엔 보고서에서도 전쟁범죄 혐의로 언급됐다. 또, 2004~2007년 아이티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됐다가 현지 어린이 성착취 스캔들에 휘말린 장성 3명도 OOC 현장 지휘관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OOC 사령부의 최종 보고 대상인 참모총장에는 라빈드라 위제구나라트나 해군제독이 앉아 있다. 그는 2008~2009년 콜롬보 납치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도주중인 해군 장교 찬다나 프라사드 헤티아라치를 도운 혐의로 지난해 11월 체포까지 됐다. 그러나 그도 곧 보석으로 풀려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국방최고위직에 앉아 있다.

10년 전 참혹한 대학살을 현장 지휘했던 군인, 언론인을 납치ㆍ암살했던 군 정보국 비밀요원, 그리고 북부의 학살을 “고요한 환희” 속에 지켜보며 ‘화이트밴 납치’를 지휘한 정치인. 이들은 모두 4ㆍ21 테러로 살아났다. ‘IS의 테러 위협’에 처한 스리랑카에선 이제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언제쯤 처벌할 거냐고 감히 묻는 것조차 어렵게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 스리랑카 정부는 4ㆍ21 테러 후 발동된 긴급 조치를 한 달 더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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