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개선 통해 원천차단
물품 인수인계 하루 1회로 줄이고
투약 등 환자상태 구두보고 생략
“특별하게 보고할 것 없지? 퇴근해요.” 올 2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이하 일산병원) 간호부에 입사한 새내기 간호사 전효진(23)씨는 3개월(12주)간 실무교육을 받고 5월 초 정형외과 병동에 배치됐다. 아직 일이 서툰 전씨가 다음 근무를 할 선배 간호사에게 환자 인수인계를 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 전씨는 “병원에 입사했을 때 솔직히 인수인계 때 ‘태움’(후배 간호사의 영혼이 불에 타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뜻)을 당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선배 간호사들이 자상하게 대해주셔서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간호계의 악습인 ‘태움’ 근절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회성 선언이나 형식적 행사가 아닌 간호업무 개선을 통한 원천 차단에 나섰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일산병원은 지난해 3월 김성우 병원장이 부임하면서 악습근절에 팔을 걷어붙였다. 진인선 일산병원 간호부장은 “태움을 근절해야 병원이 간호사들에게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다는게 병원장의 의지였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시작된 간호업무 개선사업의 핵심은 출퇴근 시간 준수다. 일산병원은 이를 위해 의약품 등 물품 인수인계를 하루 3회에서 1회로 줄였다. 손재이 일산병원 수간호사는 “신입 간호사들은 그동안 물품 인수인계 때문에 출근시간보다 1시간 빨리 출근하는 등 애로가 많았다”며 “신입이 선배보다 무조건 빨리 출근해야 한다는 군대식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게는 1시간 가까이 걸리던 인수인계 시간도 15분 이내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산병원 간호사들은 전자의무기록(EMR)과 환자 상태, 투약여부를 근무시간에 작성한 병동환자별 업무계획서를 다음 근무 간호사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인수인계를 마친다. 인수인계 때 선배 간호사에게 구두로 환자상태를 일일이 보고하도록 하는 다른 병원 간호부와는 사뭇 다르다. 8년차 간호사 유루리(30)씨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지적이나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데 기록으로만 업무를 파악하게 되니 불필요한 마찰이 줄어들었다”며 “인수인계 시간이 줄어든 만큼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일산병원 간호부가 지난해 10월 병원 간호사 1,215명을 대상으로 출퇴근시간 준수율을 조사한 결과, 업무개선 시작 전인 5월에는 출근시간 준수율이 53.6%였지만 10월에는 87.9%로 대폭 상승했다. 퇴근시간 준수율도 5월에는 54.5%였지만 10월에는 68%로 높아졌다.
올 3월 교육전담간호사 5명이 병동과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 배치되면서 선배 간호사들의 교육부담도 줄어들었다. 환자를 돌보면서 후배까지 교육하다 보면 가혹행위로 이어지기 쉬운데 교육전담간호사가 생기면서 선배 간호사들은 본인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일산병원은 올 초 간호사 채용 시 교육전담간호사를 대체할 간호사들을 추가 채용해 병동에 배치했다.
한림대성심병원도 2017년 7월부터 교육 전담 수간호사들이 배치돼 신규간호사들에게 정맥주사실기, 기본간호술기, 심폐소생술 등을 가르치고 있다. 건국대병원은 이달 중순 보직자가 아닌 실무 간호사 12명을 위원으로 위촉해 간호근무개선위원회를 꾸렸다. 오경미 건국대병원 간호부장은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의견을 취합해 근무환경을 개선하면 태움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지난해 2월 서울 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가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태움 문제가 공론화되자 보건복지부는 교육전담 간호사 배치, 3개월 이상 교육기간 확보 등을 포함한 ‘신규간호사 교육·관리체계 구축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바 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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