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동성혼 지지 집회 도중 한 동성 커플이 손을 맞잡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출산이 늘어나면서 자녀의 국적을 두고 새로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한 동성 커플이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물려주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이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ㆍ자식 사이의 생물학적 관계를 시민권 인정의 필수조건으로 규정한 현행법 탓이다.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동성 커플인 제임스 데릭 마이즈와 조너던 그레그의 사연을 소개했다. 미국 시민인 두 사람은 지난해 그레그의 정자와 기증받은 난자를 이용해 해외에서 딸을 낳았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이 딸을 미국인으로 즉각 인정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출산을 한 점, 영국 출생인 그레그의 정자를 이용한 점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 이민법은 해외 출생 시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자녀가 미국인 부모와 생물학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동성 커플은 정자를 기증한 배우자 한 쪽만 자녀와 혈연 관계가 성립된다고 정부가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리모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혼외 출산으로 간주돼, 생물학적 부모가 최소 5년 연속 미국에서 거주한 시민권자라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된다. 그레그는 미국 시민이긴 하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한쪽의 혈연 관계만 인정하는 현행법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경우는 여성 커플에서도 발견된다. 이탈리아 여성과 미국 여성 사이의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국무부는 미국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만 미국 국적을 부여했다. 국무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서 논평할 수 없다”고 코멘트를 거부했다고 NYT는 전했다.

국무부도 할 말은 있다. 현행 미국 이민법은 1952년에 만들어졌고 대리모와 시험관 시술 같은 보조생식기술이 출현하기 훨씬 이전이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클레어몬드 연구소의 존 이스트먼 선임연구원은 “해외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시민권 부여가 거짓으로 행해지지 않도록 생물학적 연결 증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스캇 티쇼 머서대 로스쿨 교수는 현행 법령이 “결혼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현대 사회적 이해에 반한다”고 NYT에 말했다.

얼마나 많은 동성 커플이 현행 이민법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조사한 통계수치는 없는 상태다. 하지만 국무부의 법 적용에 대해 아이들 둔 동성 커플들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반이민 움직임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이가 추방될 수도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2017년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남성 간 혼인 커플은 45만1,494쌍, 여성 간 혼인 커플은 48만3,735쌍이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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