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포용국가 아동정책’ 발표]
아동학대 가해자 75%가 ‘부모’… 친권자 체벌 한계 설정 등 검토
“훈육에 아직 체벌 필요” 지적에 “모든 체벌 금지는 아냐” 선 그어
지난해 12월 전북 군산의 야산에서 사망한 지 8개월 만에 발견된 고준희(당시 5세)양에 대한 학대의 시작은 ‘30㎝ 길이의 자’였다. 부검 결과 갈비뼈 3곳이 부러진 것으로 확인된 고양의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아 훈육 차원에서 몇 차례 때렸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자로 몇 대 내리치는 수준이었던 훈육은 점차 강도가 높아져 결국 아이의 죽음을 불렀다. 2013년 울산 이서현(당시 8세)양 역시 갈비뼈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즉사했지만 새엄마는 “아이가 너무 엉망이라 아이 아빠와 합의 하에 체벌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훈육용 체벌’은 아동 학대자들의 흔한 변명이다. 정부는 앞으로 위해 가정에서 훈육을 목적으로 자녀를 때리지 못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민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67명의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매달 2명이 사망하는 ‘아동 위기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다. 또 의료기관이 태어난 아이의 출생 사실을 공공기관에 직접 알리고, 정부는 매년 아동 전체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는 전수조사를 실시해 촘촘한 보호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관계부처가 이날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담겼다.
정부는 우선 민법으로 규정된 친권자의 징계권의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지난해 아동학대 건수(2만4,433건) 중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는 75.4%(1만8,433건)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징계의 방식을 명시하지 않아 훈육 목적의 체벌을 사실상 법으로 용인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아직까지 아동에 대한 체벌 자체는 필요하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복지부가 2017년 12월 전국 20~60세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국민인식 조사에서 76.8%는 ‘사랑의 매’로 일컬어지는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는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은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의 체벌까지 금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민법의 징계권을 당연히 체벌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이 태어난 모든 아동을 누락 없이 국가 기관 등에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도 추진한다. 부모에 의존하는 출생신고 시스템 때문에 아이를 낳고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이른바 투명인간으로 살다 숨지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법무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와 함께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게 된다. 다만 의료계에서는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동석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출생통보제를 시행하려면 의료기관에서 산모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서 “만약 문제가 되면 병원에 책임을 물을 텐데, 의사들의 부담만 가중된다”고 주장했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산모가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을 꺼리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상담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신원을 감추고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도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이르면 올해 10월부터 매년 만3세 유아 전체에 대해 관계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합동으로 아동 소재ㆍ안전 등을 확인하기 위한 전수조사도 실시된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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