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국내 첫 일정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면담이었다.
22일 오후 3시40분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부시 전 대통령은 불과 2시간 여만인 오후 6시30분 숙소인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로 찾아온 이 부회장과 만나 30여분간 비공개 단독 면담을 가졌다. 두 사람은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난 건 지난 2015년 이후 4년만이다. 당시 부시 전 대통령은 프레지던츠컵 골프 대회 개막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 이 부회장 등과 함께 골프를 치기도 했다.
부시 일가와 삼성 일가의 인연은 2대에 걸쳐 이어질 정도로 끈끈하다. 23년전인 1996년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착공할 당시 텍사스 주지사가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당시 정치 초년병이었던 부시 전 대통령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외국기업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고, 삼성전자가 이에 호응해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이 공장은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집행한 역대 최대 규모 투자였고, 부시 전 대통령은 1998년 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감사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2년 현직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 40분간 단독 면담하고 미국 투자 방안 등을 논의했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2003년 오스틴 공장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나노테크 3개년 투자‘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아들 부시도 대선 후보였던 1999년 이 회장과 만나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이 잘 돼야 텍사스가 잘된다”고 말하며 삼성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재계는 삼성의 투자를 계기로 맺어진 두 가문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이 부회장과의 면담을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부시 전 대통령은 주지사 시절 삼성전자 공장 유치에 성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한 경제 실적을 내세워 2000년 공화당 후보로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며 “한국을 찾을 때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나려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서만 3차례 외국 정상급 인사와 회동하면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지난 2월 청와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국빈 오찬에 초청 받았고, 같은 달 아랍에미리트(UAE)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왕세제와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만났다. 이 부회장은 특히 알-나흐얀 UAE 왕세제와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와 UAE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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