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 갈등 현안에 입장 밝혀야
극단 정치 아닌 건전한 정치 위해 필요
안 그러면 네이밍 공격 벗어나지 못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러 입장하는 도중 `망언 의원' 징계 등을 요구하는 시민에게 항의받고 있다. 광주 청와대사진기자단

‘독재자의 후예’가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ㆍ18 기념사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ㆍ18을 다르게 볼 수 없을 것”이란 발언을 하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맞대응하면서다. 소속 의원들의 5ㆍ18 항쟁 막말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자유한국당을 겨냥했을 대통령의 말에, 황 대표는 “진짜 독재자의 후예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말 한마디 못한다”고 청와대를 조준했다. 그러면서 “내가 왜 독재자의 후예냐”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제 발이 저린 것 아니냐”는 공격을 받긴 했지만 황 대표는 독재자의 피를 받지도, 대리인으로 낙점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황 대표가 받고 있는 ‘네이밍’ 공격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독재자의 정치적 후예나 동조할 법한 논란과 쟁점에 자기 입장 없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성적 정체성을 확인한 게 유일하다. 야당 대표가 4개월 동안 자신의 정치ᆞ사회적 정체성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부터 5ㆍ18 막말 정치인 징계 문제까지 분명한 선 긋기를 하지 않고 있다. 언제든 본인과 당이 네이밍과 프레임에 쉽게 걸려들 수밖에 없는 취약한 처지다. 지난달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한 한국당을 다른 야당이 ‘과연 독재자의 후예답다’고 비판한 것도 마찬가지다.

마케팅 전략인 네이밍은 정치적으로는 상대를 원하는 대로 색칠할 수 있다. 네이밍이 가져오는 선악, 좋고 나쁨의 감성적 이미지는 다른 사안에까지 덧씌워진다.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외신들은 ‘독재자의 딸’이란 수식어가 붙은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마다 독재자의 딸이라고 하니 국가 이미지마저 독재국가로 낙인 찍힐 정도였다. 외교 채널까지 동원되고 나서 ‘독재자의 딸’은 ‘역사의 후예’로 바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혹평을 받은 것도 네이밍에 당한 억울한 부분이 있다. 경제만 해도 과거 정권에 비해 크게 잘못한 게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노무현 탓’이 되면서 과거 정권들의 유산까지 책임을 덮어 썼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경제를 왜 죽었다고 하느냐고 그는 볼멘소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권 말에 ‘경제 실패’는 보수와 진보를 불문한 평가가 돼버렸고, 정권은 경제 살리기 구호를 내건 야당에 넘어갔다. 정치적 실수가 잦았고 서민 정서에 둔감했다는 비판은 그렇다 해도 왜곡 비방의 네이밍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은 아픈 부분이었다.

우리 정치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황 대표의 사회적 갈등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선 긋기는 필요하다. 독재는 문지기와 견제자가 없는 정치와 세상에서 탄생한다. 복기를 통해 바둑 실력을 늘리듯, 정치도 과거 반성을 토대로 방향을 진단하는 게 의미가 크다. 2015년 7월 8일 박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우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원내대표직을 떠났다. 보름 정도 지나자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재벌 총수들을 불러들이기 시작, 탄핵의 빌미를 만들었다. 정치적 견제자가 사라지자 정경유착이란 독재의 고질이 고개를 든 셈이다.

지금 여야는 국회는 비워두고 민생 현장만 찾는다. 여론조사에서 이미 민주ᆞ한국당 지지율이 각기 40%ᆞ30%대로, 양강 대결 구도가 굳어지자 지지세력 다지기 행보만 하고 있다. 정치가 없는 사이 주말이면 태극기부대 집회가 서울 도심을 장악하고, 민심은 현안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 엘리트주의 혐오, 언론 불신 등이 뭉쳐 있는 지금은 문제적 정치인이 탄생하기 딱 좋은 여건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 유럽연합(EU)까지 전 세계는 극우 정치인 판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얼마 전까지 대통령 배역을 한 코미디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식에서 의회 해산을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극단적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