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기업 9개 사업장 20만명
고용부 안전보건공단 역학조사
반도체 제조업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일반 노동자에 비해 백혈병 사망 위험은 2.3배, 악성림프종(비호지킨림프종) 사망 위험은 3.7배 높다는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왔다.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후 정부가 10년간의 역학조사 끝에 ‘반도체 작업 환경이 혈액암에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은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의 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를 추적 조사해 이와 같은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2009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0년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케이이씨, DB하이텍 등 6개 기업 반도체 사업장 9곳의 전ㆍ현직 노동자 약 20만명을 조사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백혈병 발생 위험은 전체 국민보다 1.19배, 전체 노동자보다 1.55배 높았고, 백혈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일반 국민보다 1.71배, 전체 노동자보다는 2.3배 높았다. 혈액암의 또 다른 종류인 악성림프종의 경우 위험성이 더 컸다. 반도체 노동자의 악성림프종 발생 위험은 일반 국민보다 1.71배, 전체 노동자보다 1.92배 높았다. 사망 위험은 일반 국민의 2.52배, 전체 노동자의 3.68배에 달했다. 일반 국민 대비 백혈병 발생 위험비만 제외하면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치다.
연구 책임자인 김은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직업건강실장은 “2008년 조사 때는 악성림프종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위험성이 확인됐지만, 사례수가 적고 관찰 기간이 짧아 (정확한) 인과관계 특정이 어려웠다”며 “이번 조사에서도 혈액암 발생에 기여한 특정 원인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여러 사항을 종합할 때 작업환경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반도체 산업 종사자여도 생산라인인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오퍼레이터(생산직 작업자)와 엔지니어 등의 혈액암 발생과 사망 위험이 높았다. 클린룸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곳으로, 방진복을 입은 오퍼레이터들이 자동화 기계를 운영하고, 생산품을 검사하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 일한 20~24세 여성 오퍼레이터들은 암 발생 위험은 백혈병의 경우 일반인보다 2.74배, 림프종은 3.3배 높게 나타났다. 이밖에 위암, 유방암, 신장암, 피부흑색종 등의 발생 비율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김 실장은 “2010년 이후는 제조 공정의 변화로 사망자가 줄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반도체 작업 환경과 혈액암의 인과관계는 규명됐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점은 이번 조사의 한계다.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이날 성명을 내고 “2010년 이후 혈액암 감소가 작업환경 개선의 결과라면 다행이지만, 암 위험이 하청이나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이전되지 않았을지 따져보아야 한다”며 “하청ㆍ협력업체 등 고위험군을 포함해 원인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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