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에서 20년간 근무해온 A씨는 2010년 2월 스크린도어 설치공사 과정에서 담당 직원들의 실수로 시공업체에 17여억원을 과다 지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감사원은 팀장인 A씨 등 직원 4명에게 정직 징계처분을 내리라는 문책요구서를 보냈고, 그로부터 8일 뒤 A씨는 등산로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와 배우자에 따르면 A씨는 감사결과를 알게 된 2011년 11월께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를 제대로 못했으며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웠다. 문책요구서를 받은 후에는 매일 누르던 현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고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거나 배우자에게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등의 말을 반복했다. 회사가 손실액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불안해하며 동료에게 “갖고 있는 것은 집 하난데 구상권 행사하면 내 인생은 끝이다”라는 말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A씨 배우자는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 없는 남편이 징계처분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생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지만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ㆍ2심은 "평균적인 노동자로서 감수하거나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중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A씨 죽음이 업무와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2심 판결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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