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경찰관이 이주노동자인 피의자에게 100회 넘게 ‘거짓말’이라며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행위가 진술거부권 침해라면서도 ‘주의’ 조치 요구에 그쳐 100만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8일 긴급 체포된 피의자 A씨는 28시간 50분(열람시간 포함) 동안 4차례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저유소 주변에서 풍등을 날린 A씨에게 중실화 혐의를 적용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진정으로 조사에 착수한 인권위는 A씨의 신문 녹화영상을 분석, 경찰관이 A씨를 조사하면서 123회에 걸쳐 ‘거짓말 추궁’을 한 것을 확인했다. 인권위는 A씨가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말할 때 ‘거짓말 추궁’으로 진술을 막고 자백을 강요하려 한 것은 법이 정한 정상적 신문 과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경찰이 이주노동자 이름 일부와 국적, 나이, 성별 및 비자 종류를 언론사에 공개해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화재사건과 무관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확산시켰고, 나아가 국가기간시설이 풍등 하나에 폭발할 정도로 허술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럼에도 인권위는 해당 지방경찰청장과 경찰서장에게 담당자 주의 조치를 요구하는 선에 그쳤다. 민변은 인권위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피의자의 통역 받을 권리 침해’를 인정하지 않은 점, 피의자 신문조서와 영상을 대조했을 때 경찰의 부적절한 삭감ㆍ수정ㆍ변경 조치가 다수 확인됐는데도 이에 대한 인권위의 언급이 없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가뜩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 남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반인권적 수사 행태는 경찰의 ‘인권 수사’ 구호를 의심케 한다. 더구나 피의자가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이주노동자라는 점에서 더 세심하게 법이 정한 수사 절차를 따랐어야 마땅하다. A씨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인과관계 소명 부족으로 검찰에 의해 두 차례나 기각된 것을 떠올리면 경찰이 이런 후진적 수사 행태로 수사권 독립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