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즈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본보와 만나 게임 중독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는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흔하게 사용하는 ‘중독’이라는 단어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도박 중독과 같은 심각한 사회 문제부터 쇼핑 중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독, 일 중독과 같은 일상적 중독까지. 과연 ‘게임 중독’은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중독일까?

1999년부터 청소년과 게임에 대해 연구해온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면역 반응”이라며 “게임은 마약이나 술과는 달리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일상적인 중독에 가깝다”고 단언했다. 게임을 못하게 막는다고 해도 근본적인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않는 한 유튜브나 SNS로 과몰입 대상이 바뀔 뿐이라는 것이다.

제72회 세계보건기구(WHO) 총회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된 20일,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이 연단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제네바=신화통신 연합뉴스
 ◇“게임의 질병화는 ‘모럴 패닉’ 현상” 

20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제72회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는 ‘게임중독(Gaming disorderㆍ게임장애)’이 정신적 질병의 한 종류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WHO는 게임장애를 △‘게임을 하는 시간과 빈도를 제어할 수 없고 △게임이 모든 관심사와 행동에 우선하며 △문제가 생겨도 계속하며 △개인과 가정, 학업이나 직장 등에 중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가 12개월 이상 지속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다. WHO의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는 전세계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의 핵심 근거로, 게임장애에 질병코드가 부여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일 확률이 매우 높다.

게임업계 및 학계 등에서는 다른 병증과 달리 게임 중독 증상에 대한 일치된 진단 기준이 없으며, 근거가 될 만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하고 있다. 게임을 병으로 보는 시각이 ‘과잉 의료화’라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정 교수는 “게임 중독 청소년 비율은 통계에 따라 3%에서 30%까지 천차만별로 나오는데, 보수적으로 3%라고만 잡아도 한 학교에서 몇 십명이 정신질환자라는 소리”라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몰입활동을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부족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질병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모럴 패닉’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모럴 패닉은 여성ㆍ청소년과 같은 ‘비주류’ 집단은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류 집단이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그는 “19세기만 해도 유럽에선 ‘여성은 현실과 소설을 구분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소설 읽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다”며 “이 모럴 패닉의 대상이 20세기엔 만화책으로, 21세기엔 게임으로 번져나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준 건국대 문화콘텐즈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본보와 만나 게임 중독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는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게임 과몰입 원인은 입시 스트레스… 폭력성과도 인과관계 없어” 

‘게임은 과몰입의 원인이 아닌 결과’라는 게 정 교수의 결론이다. 그가 2014년부터 5년간 청소년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게임 과몰입에 관한 코호트(추적조사) 연구가 근거다. 그는 “게임 과몰입을 막을 수 있는 자기통제력은 부모의 양육 방식과 태도, 교사의 지지 정도에 따라 달라졌다”며 “부모의 과잉 기대와 간섭이 심해질수록 아이들은 게임에 더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부모와 신뢰성 있는 대화를 꾸준히 하는 아이들은 자기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난히 중국과 한국에서 게임 중독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는 것도 정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 교수는 “두 나라 모두 대학 입시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여길 정도로 청소년 시기 경쟁이 심하고, 부모가 자식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병적으로 취약한 구조에 우리 아이들이 놓여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이 폭력성과 충동성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정 교수는 “이게 사실이라면 과거에 비해 현재 청소년 범죄율이 높아져야 하는데, 통계에서 보듯 확연하게 떨어지지 않았나”라며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재까지 학문적으로 인과관계가 밝혀진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정 교수의 처방은 ‘부모와 교사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정 교수는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청소년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며 “단순히 아이들의 손에서 게임을 빼앗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다음 번엔 유튜브나 운동, 쇼핑 중독도 병으로 등재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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