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계단은 계단에 피아노 소리가 나는 장치를 설치해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도록 시민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넛지 마케팅이다. 사진은 통영 서호벼락당의 소리나는 피아노 계단. 통영시청 제공

지난해 하반기, 강남의 한 대형 신축 아파트단지에서는 단지 내에 생기는 두 개의 초등학교를 혁신학교로 일방적으로 지정한 데 대한 반발이 거셌다. 왜 다른 대안 없이 모든 학교를 다 혁신학교로만 지어서 선택권을 박탈하느냐는 타당한 문제 제기였다. 결국 교육청은 한 발 물러섰고, 비록 목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혁신학교의 등장을 반겼을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일방적인 추진은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에게 막대한 비용을 치르게 한 셈이 됐다.

지금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110번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십 년간 농지로 활용되던 공간에 추가로 2,500여 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물론 요식적인 공청회는 있었지만, 지역 민심의 저류를 반영하는 데는 실패했다. 2020년 9월 착공하는 이번 사업은 신혼부부를 위한 희망타운과 청년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를 포함한 공공주택을 지어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좋은 취지다. 하지만 이미 매일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 아침마다 콩나물시루 같은 광역버스를 위험하게도 서서 탑승해야 하는 기존 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추가로 입주할 가구들로 인해 빚어질 교통지옥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이미 타 학교에 비해 학생 수가 많은 과밀 학교에 학생들이 더 몰려들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주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과 지역의회 의원들은 이제서야 부산을 떨며, 교통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둥, 신설 단지 내에 학교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둥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해당 지역을 공공주택지구로 확정 고시해 버린 뒤다.

주민의 불평을 지역이나 계층 이기주의로 본다면 해당 지역을 과감히 확정 고시하는 게 ‘통쾌’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외계층을 기존 지역에 어거지로 섞이게 만드는 방식의 ‘소셜믹스’는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아무리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커도 혁신학교를 주민들에게 강요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박사가 주창한 ‘넛지(nudge)’이론은 공익성 높은 캠페인을 할 때 절대 일방적인 소통을 하지 말라고 한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그머니 민다’는 뜻으로, 강요가 아닌 긍정과 유머의 메시지를 담은 설득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함을 일컫는다. 화장실 남성용 소변기에 그려진 곤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우리 나라에서도 세일러 박사의 저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도 넛지로 성공한 사례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리더들은 열심히 설득의 방식을 공부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리 선한 취지의 일이라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 큰코다친다는 교훈을 다시 새겨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변화의 핑계가 될 만한 파격적인 혜택의 제공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지역 숙원사업 해결이나 지역 비전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 등이다. 주고받기의 ‘상호성(reciprocity)’은 우호적 관계 형성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다는 공공선, 혁신학교를 통해 기존 관습적 공교육의 틀을 깨보겠다는 의지는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빈 땅을 일방적으로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하고 기존 주민들의 고통에 눈감는 방식은 권위주의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아니, 단순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더군다나 관습적으로 일하는 공무원들과 역시 기계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적 반대파들 때문에 선출직 지자체장들은 많이 힘들 것이다. 일방적 정책 추진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주민이다. 그러기에 더더욱 공부하고, ‘넛지’해야 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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