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나무 악기’. 얼마 전 참여했던 서울시향의 퇴근길 토크콘서트의 주제입니다. 항상 숲과 나무 이야기를 해 오고 살아왔지만, 나무로 만든 악기에 대해선 제대로 알고 느껴본 일이 없더라고요. 음악가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연주자들에게 분신과도 같은 악기의 소재인 나무 그 자체에 대해서는 깊이 알 기회가 없었다고 반가워하셨어요. 나무 이야기와 함께 악기에 집중하여 아름다운 곡들을 만나는 콘서트가 특별하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객도 마찬가지였다는 후문입니다.
목관악기만이 나무가 재료인 것은 아닙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현악기들도 몸통은 나무이지요. 나무 실로폰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림바라는 악기처럼 건반 자체가 나무로 만들어진 타악기들도 있습니다. 악기의 재료로 왜 나무가 좋을까? 나무는 가볍고 탄성이 커서 소리의 진동을 잘 전달하고, 작은 진동을 증폭하여 공기 중으로 울려 퍼지게 하며, 만들어진 소리를 머물게 하여 오랫동안 울림이 계속되도록 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귀에 거슬리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는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무 악기의 소리는 부드럽고 평온하다고 합니다. 마치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숲에서의 느낌처럼 말이죠.
악기의 재료가 되는 나무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의 하나가 가문비나무입니다. 하지만 가문비나무는 우리나라의 지리산과 같은 고산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영어로 수프루스(spruce)란 가문비나무류를 통틀어 말하는데 그 중에서도 유럽에서 악기를 만들었다면 독일가문비나무가 맞을 듯합니다.
기후학자와 나이테를 연구하는 학자의 이야기로는 유럽의 알프스산맥에는 1,400년대 중반부터 수백 년간 소빙하기가 있어서 추운 겨울이 오래 지속되었고 여름마저도 서늘했다고 합니다. 나무들은 이 환경을 어렵게 견디며 더디게 자라다 보니 특별히 단단하고 큰 밀도를 가지게 되었고 이런 나무로 만든 악기들이 특수한 음향을 가진다는 겁니다. 가장 값비싼 바이올린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만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를 비롯한 유명한 이탈리아 악기 제작자들이 악기를 만든 것이 17세기 전후이니 이들이 사용한 나무 악기 재료는 바로 알프스산맥의 높은 수목한계선에서 길고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나무들이었기에, 조직이 치밀하고 소리가 청아한 명품 악기가 탄생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후 온난화를 겪고 있는 지금 알프스의 만년설은 점차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런 특별한 재질의 독일가문비나무로 만든 악기들을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같은 산의 같은 나무도 자란 환경에 따라 그 질을 달리하므로 좋은 악기의 재료가 될 나무들을 고르러 다니는 나무픽커라는 일을 하는 이도 있다고 합니다. 유럽의 여러 음악도시들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숲과 나무들을 배경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숲이 만들어낸 악기마저 그 숲의 생태와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의 물이 되어 길고 길었던 봄 가뭄을 씻어 줄 만큼 충분히 내려준 지반 주말의 봄비가 그치고 나니 초록 숲은 더욱더 싱그럽게 깊어 갑니다.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소중한 자연을 위한 작은 실천 하나하나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아쉽지만 봄을 보내려고 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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