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을 장악한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대한 방식은 예외 없이 비열하고 난폭했지만, 영국인들이 호주 원주민(Aborigines)에 가한 폭력과 차별은 무척 근원적이고도 집요했다. 백인 지배자들은 본토 애보리진과 토레스제도 원주민, 태즈메이니아인 등을 토착 동물의 한 종으로 분류해 긴 세월 동안 인구조사에서 아예 배제했고, 19세기 말부터 1969년까지 약 70년 동안 ‘원주민 동화정책’을 구실로, 원주민과 백인 혼혈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빼앗아 교육 시설에 강제수용한 채 백인 언어와 문화ㆍ종교를 가르쳤다. 호주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총과 대포, 매독과 홍역에 희생됐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백인들의 노예로 부려졌고, 저렇게 정체성을 박탈당했다. 18세기 말 이래 약 한 세기 동안 호주 원주민 인구는 약 90%가 줄었고, 근년에는 다소 늘어난 45만여명으로 호주 전체 인구의 2.4%를 점한다.
1967년은 호주 원주민 정책의 분수령이 된 해다. 그해 5월 27일 호주 정부는 원주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안건의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쳤고, 유권자의 90.77%가 찬성함으로써 원주민에게 호주 국민으로서의 의무 및 권리 일부를 부여했다. 2년 뒤 호주의 모든 주는 ‘원주민 동화정책’ 관련 법안 일체를 폐지했고, 다시 40년 뒤인 2008년 케빈 러드 연방 총리가 저 정책에 대해 국가와 백인 지배정치의 역사를 대표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호주 헌법은, 유럽의 백인들이 장악한 캐나다나 인근 뉴질랜드와 달리, 원주민을 국민의 범주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원주민 문화와 역사도 호주 헌법이 규정한 바, 공식 문화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요구가 원주민 공동체와 노동당 등 진보 정치 진영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것이 실현되리라 기대를 모은 해가 1967년 국민투표 50주년이던 지난 2017년이었다. 2010년 줄리아 길라드 당시 총리(노동당 대표)도, 2013년 집권한 보수연립의 토니 애벗 총리도 공식적으로 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토니 애벗은 2014년 말 기자회견에서 67년 국민투표와 같은 날짜에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로 가결되도록 하기 위해 “피땀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그는 “만일 실패할 경우 그건 호주 국민 모두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인 만큼, 서두르기보다는 제대로 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가 말한 실패란 개정 헌법의 가결-부결이 아니라 국민 여론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17년 호주 국민투표는 9~11월 치러진 동성혼 법제화뿐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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