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차관 감투 버리고 신남방 정책 올인”
“우리 외교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
임성남(61) 신임 주아세안(ASEANㆍ동남아시아국가연합) 대사가 16일 밤 자카르타 아세안 대표부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포부를 밝혔다. 대미(주미 참사관) 대중(주중 공사) 북핵(북핵 담당대사) 외교 무대에서 활약하고, 외교부 1차관을 역임한 그는 첫 차관급 아세안 대사로 발탁됐다. 전임자들은 국장급이었다. 아세안 10개국과의 관계를 4강(미ㆍ중ㆍ러ㆍ일)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신(新)남방 정책 지역총사령관’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첫 차관급 아세안 대사의 의미는.
“문재인 정부가 신남방 정책을 내세우기 전까지 우리 정부, 국민, 언론의 시각은 4강 주변으로만 한정됐다. 아세안 대표부 격상을 계기로 외교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길 기대한다. 경제적 잠재력, 지정학적 위치 등 많은 나라가 아세안 국가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세안 대사를 차관급으로 격상한 것은 선도적인 외교로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롤모델(본보기)이 될 것이다. 핵심 외교의 전진기지에 와서 영광이고 부담이다.”
-아세안과 관련된 직접 경력은 없는데.
“외교부 1차관하면서 아세안을 빈번하게 방문했다. 아세안에서 근무한 건 아니지만 아세안과 업무적으로 많은 인연을 맺어왔다. 관련 회의도 많이 참석했다.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지에 외교관 친구들이 많다.”
-다른 나라의 반응은 어떤가.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은 우리 대표부의 격상을 크게 환영했다. 다른 회원국 대사들 역시 아세안에 대한 진지한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17일 오후 아세안 사무국에서 열린 임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서 림 족 호이 사무총장은 “신남방 정책을 통해 한ㆍ아세안 관계를 격상하고자 하는 한국의 의지를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마침 자카르타를 방문한 이석현 의원 등 한ㆍ아세안 의회외교포럼 대표단도 행사에 동석했다.
-신남방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나.
“신남방 정책의 특징은 외교를 전개해 나가는 시간의 틀이 급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원국은 10개지만 미국이나 중국처럼 덩치가 크지 않아, 여러 개의 작은 사업과 과제들을 사람(People) 상생번영(prosperity) 평화(Peace)의 ‘3P 공동체’ 원칙 안에서 효율적으로 추진하겠다. 베트남에 쏠린 투자 교역을 다른 국가로 다변화하고, 소비재 수출을 넘어 인프라, 스마트시티, 디지털, 금융 등 협력 분야도 다변화할 예정이다. 아세안이 중시하는 연계성을 감안해 각 회원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공공기관과도 협의를 해 나가겠다.”
-각국의 한국 대사관 업무와 중복되지 않나.
“아세안 대표부의 격상은 기업으로 치면 지역본부 역할을 맡긴 거다. 우리 외교에선 해보지 않은 시도라 당연히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틀은 아직 없다. 시너지를 내라는 게 대통령의 지시이고 더 잘 해보라는 게 신남방의 취지다. 가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이다. 각국 한국 대사들이 모두 동료이고 후배인 만큼 도와줘야겠다는 자세로 일할 것이다. 협업하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산 방문은.
“김 위원장이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2019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진짜로 올 수 있겠느냐고, 몇몇 회원국 대사들이 묻더라. 아세안 국가 모두 한반도 정세에 다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방한을 위해선 아세안과의 협의, 한반도 정세의 여러 측면, 두 가지를 살펴야 한다. 아직 6개월 정도 남은 지금 단계에서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에게 반드시 이루고 싶은 한가지를 물었다. “‘한국이 아세안의 진정한 친구다’라는 말을 떠날 때 듣고 싶다. 머리카락은 많이 빠졌지만 누구보다 젊은 마음으로, 차관이었다는 감투도 버리고 겸손하게 다가가겠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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