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최근 벌어진 ‘제8회 천태산배’에 이어 ‘IMSA 월드마스터스챔피언십 2019’에서도 우승
하지만 최정 9단과 오유진 6단, 김채영 5단 등을 이어갈 차세대 주자 기량은 중국과 격차
신인 발굴과 육성은 시급한 과제
“중국을 넘어선 세계 최강이라고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고 했다. 세계대회에서 잇따라 승전보를 울려댔지만 기쁨 보단 걱정이 앞서 보였다. 한국 여자 바둑 컨트롤타워의 냉철한 진단이다.
사실 최근 상승세인 한국 여자 바둑 대표팀의 성적표를 감안할 때, 얼핏 보면 야박한 평가로도 읽힌다. 실제 12일 막을 내린 ‘제8회 천태산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우승상금 약 5,100만원)에서 국내 랭킹 1,2,3위(5월 기준)인 최정(23) 9단과 오유진(21) 6단, 김채영(23) 5단을 내세운 한국은 중국 및 대만, 일본 등을 각각 3-0으로 완파하면서 무결점 우승 기록도 세웠다. 이로써 한국 여자 바둑대표팀은 6회부터 올해까지 이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한국 여자 바둑대표팀에선 또 16일 끝난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IMSA) 월드마스터스챔피언십 2019’(우승상금 약 3,200만원) 단체전에 최정 9단과 오유진 6단이 출전, 역시 중국 등을 물리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승컵을 가져왔다. 한국 여자 바둑 대표팀의 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한 수 위로 보여지기엔 충분한 결과다. 커제(22) 9단을 필두로 한 중국 바둑에 열세인 한국 남자 바둑과는 확실하게 비교된다. 한국 남자 바둑 대표팀은 이번 IMSA 대회에서도 국내 랭킹 1,2위인 박정환(26) 9단과 신진서(19) 9단, 이지현(27) 9단 등이 참가했지만 중국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국제마인드스포츠협회에서 주최한 ‘IMSA 월드마스터스챔피언십’은 바둑을 포함해 체스와 브리치, 체커, 중국장기 등 5개 종목, 17개 부문에서 메달 다툼을 벌이는 대회다.
이처럼 한국 여자 바둑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표를 가져왔지만 바둑 대표팀내 코칭스태프들은 현재 보단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인 목진석(39·9단) 감독은 “이번 천태산배에서 거둔 퍼펙트 우승은 축하하고 경사이다”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비해 확실하게 앞서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들과 함께 분석한 결론이다”고 전했다. 다른 세계대회에서 확인된 두터운 중국 선수층의 기량을 고려한 해석이다. ‘제8회 천태산배 세계여자바둑단체전’의 한국 대표팀 단장으로 이 대회에 참가한 박정상(35·9단) 국가대표팀 코치도 “솔직히 지난해까지는 최정상권이 두터운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이 중국에 비해 약간 앞서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현재 사실상 트로이카(최정 9단·오유진 6단·김채영 5단) 시대를 열어 제친 3강 이외의 전력에선 중국에 비해 나을 게 없단 얘기다.
무엇보다 차세대 주자들의 면면에선 중국측 경쟁력이 우리나라를 압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중국 바둑계에선 위즈잉(22) 6단과 왕천싱(28) 5단, 리허(27) 5단 등의 뒤를 이어갈 자원들이 풍부하다. 중국 여자바둑계 차세대 선두주자로 떠오른 저우홍위(17) 4단이 대표적이다. 특히 저우홍위 4단은 최근 벌어진 ‘제23기 중국 신인왕전’ 3번기 에서 남자 기사인 천하오신(15) 4단을 2대0으로 누르고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남녀가 함께 출전한 중국 신인왕전에서 여자 기사가 우승한 건 21기 결승전 당시, 위즈잉 6단이 리진청(20) 9단을 꺾은 이후 두 번째다. 일반적으로 남자 기사들이 여자 선수들에 비해 우수한 기량을 보이고 있는 바둑계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저우홍위 4단의 신인왕전 우승은 이변에 가깝다. 이 밖에도 올해 한국의 최정 9단에게 패한 대국 이외엔 국내 여자선수들에게 모두 승리했고 가오싱(23) 4단이나 최근 급부상한 루민취안(20) 4단 등의 기량은 이미 정상권에 근접한 상태다. 박정상 한국 바둑 국가대표팀 코치는 “지금 보단 미래의 최정상권 발굴과 육성이 당면과제이다”며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선수들이 보이는 만큼, 이들의 기량을 가다듬고 성장시키는 게 중요한 현안이다”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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