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작은 빵집 ‘오월의 종’은 ‘빵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매일 오전 11시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로 북적댄다. 무화과 호밀빵, 크랜베리 바게트 등 대표 빵은 한두 시간 만에 품절된다. 이태원 1, 2호점과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등 세 곳에서 하루에 판매되는 빵이 1,000여개. 동네 빵집치고 엄청난 양이다. ‘오월의 종’의 대표는 공대를 나온 시멘트 회사 영업사원에서 제빵사로 늦깎이 변신한 정웅(51)씨. 산문집 ‘매일의 빵’을 낸 그를 최근 이태원 2호점에서 만났다.
정 대표가 빵에 빠진 건 ‘우연’이었다. 입사 6년만인 2001년 “내 의지로 이끌어 가는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서” 시멘트 회사를 그만 뒀다. 사표를 낸 날,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있는 작은 빵집이 그의 눈에 들었다. 무작정 제빵 학원에 등록했다. “빵을 만들겠다고 계획한 적도 없고, 빵을 제 돈 주고 사먹어 본 적도 없어요. 뭐라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빵을 정 대표는 누구보다 빨리 배웠다. 노력도 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빵을 만들었다.
3년만인 2004년 경기 고양시에 첫 빵집을 열었다. 요즘 만드는 것과 똑 같은 빵을 팔았지만, 하루에 한 개도 팔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빵이 딱딱하고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류의 혹평을 들었다. 시큼한 효모 냄새를 놓고 “상한 빵 같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빵집은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정 대표는 빚을 떠안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망하고도 빵 만드는 일이 좋더라고요. ‘내가 정말 빵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죠.”
두 번째 기회도 우연히 찾아왔다. 빵집 손님 중 한 명이 “이태원이라면 잘 될 것 같다”며 정 대표의 등을 떠밀었다. 마지못해 찾은 이태원에서 빵을 좋아한다는 부동산중개업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정 대표에게 대출까지 해 주면서 빵집을 다시 해 보라고 권했다. 정 대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2008년 2월 ‘오월의 종’ 1호점을 열었다.
세상은 여전히 그의 빵을 알아 주지 않았다. 매상은 바닥이었고, 제빵대회 심사위원들에게 “기본이 안된 빵”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정 대표는 만들고 싶은 빵을 계속 만들었다. 행복해서였다. 3년을 그렇게 버텼다. “안 팔리는 빵이 너무 아까워서 주위 술집에 나눠줬어요. ‘의외로 괜찮다’는 반응이 아주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1년 어느 날 처음으로 빵이 다 팔렸죠. 이후로 가속이 붙기 시작하더니 품절 행진이었고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도움도 컸어요.”
‘오월의 종’의 손님은 절반 이상이 중장년 남성이다.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중장년 남성이 많아진 데다, 질리지 않는 맛 덕분인 것 같아요.” 정 대표는 재료를 아낌 없이 쓴다. 무화과 호밀빵은 성인 팔뚝 만한 크기에 무화과를 가득 넣고도 2,500원이다. 그는 가게를 확장하거나 빵 생산량을 늘릴 생각이 조금도 없단다. “제가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만들고 싶어요. 지금 생산하는 게 최대치에요. 빵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 건 맞지만, ‘많이’ 벌기 위해 빵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명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싫어요. ‘먹을만한 빵 만드는 제빵사’로 기억해 주시면 충분해요.”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