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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46년 만에 흔들리는 ‘낙태의 권리’… 내년 대선 최대 이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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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46년 만에 흔들리는 ‘낙태의 권리’… 내년 대선 최대 이슈 전망

입력
2019.05.17 18:42
수정
2019.05.17 19: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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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지지하는 미국 시민들이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주의회에서 열린 낙태 찬반 토론회에서 커스틴 길리브랜드(앞줄 맨 아래) 민주당 상원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애틀랜타=로이터 연합뉴스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지지하는 미국 시민들이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주의회에서 열린 낙태 찬반 토론회에서 커스틴 길리브랜드(앞줄 맨 아래) 민주당 상원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애틀랜타=로이터 연합뉴스

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40년 넘게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돼 온 미국에서 ‘낙태 찬반 논쟁’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이후 가속화한 사회 전반의 우경화를 등에 업고 공화당의 텃밭이자 보수 성향인 다수의 남부 주(州)들이 연방 대법원의 판례 변경을 노리고 초강경 낙태 금지법안을 속속 내놓고 있다. 특히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소설 ‘앵무새 죽이기’의 배경이 된 앨라배마 주에서는 성폭행에 따른 ‘예외적 임신’까지 낙태를 불허, 여성계와 민주당 성향인 서부와 동북부 주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고 있다. 미국 내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이번 논쟁이 내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 전역에서 찬반 논란을 불붙게 한 기폭제는 앨라배마주의 낙태 금지법안이다. 지난 14일 주 상원 가결에 이어 이튿날 저녁 케이 아이비(공화당)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은 임산부 건강이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때 정도를 빼곤 거의 모든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성폭행, 근친상간 등으로 아이를 갖게 된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임신 기간과 관계 없이 낙태 시술을 해 준 의사는 최고 99년 징역형, 종신형에 처하도록 했다. “사실상 낙태를 원천 봉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남부의 ‘반 낙태’ 흐름은 앨라배마 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조지아와 켄터키, 미시시피 등도 태아의 심장 박동이 인지되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앨라배마 법안이 가장 강력한 조항을 담은 데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것”이라는 정치적 배경을 노골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가장 크다. 법안을 낸 테리 콜린스(공화) 주 하원의원은 “(대법원 판결인) ‘로 대 웨이드(Roe vs. Wade)’에 도전하고,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새 법이 낙태 옹호론자들에 의해 소송을 당해 40여년 만에 다시 한번 연방대법원 판단을 받길 바란다는 뜻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11월 연방대법원이 ‘임신 중기 이전 낙태’를 금지했던 당시 법률을 7대 2로 위헌 판단한 것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 증진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사례로 꼽힌다.

남부 보수진영의 공세만큼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맞대응도 거세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여성의 삶과 근본적 자유에 대한 소름 끼치는 공격”이라고 했고, 민주당 대선주자인 카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여성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바비 싱클턴(민주ㆍ앨라배마) 주 상원의원도 “(법안 통과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텃밭인 콜로라도주와 메릴랜드주는 앨라배마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경제제재를 취하기로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연방 의회의 공화당 수뇌부도 앨라배마 주의 움직임에는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치 매코널(상원)ㆍ케빈 매카시(하원) 원내대표 모두 “너무 멀리 (극단적으로) 나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보수 진영의 낙태 금지 움직임은 계속 확산될 조짐이다. 16일 미주리주 상원은 ‘임신 8주’ 이후의 낙태는 성폭행 피해 등과 관계없이 불법화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같은 날 연방상원에선 낙태 반대 운동을 펼치는 웬디 비터 변호사가 이 지역 연방 판사로 인준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이후 연방대법원이 닐 고서치ㆍ브렛 캐버노 대법관 지명과 함께 보수 우위(9명 중 5명)로 돌아서는 등 정치ㆍ사법적 지형이 바뀐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NYT는 “공화당은 민주당을 향해 ‘낙태를 조장하는 죽음의 당’이라고 공격하고, 낙태와 관련해 ‘영아 살해’라는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며 “보수주의자들에게 이런 주장이 먹히면서 민주당이 뜻밖에 방어적 입장을 취하는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WP는 “낙태 논쟁은 2020년 대선에서 문화전쟁에 불을 붙일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며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에든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잠재력이 있는 사안”이라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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